201804-201806 책 로그

이번 달에는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특히 6월은 더더욱 그랬다. 준비는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컨퍼런스가 있다는 사실에 초조하기만 하고, 여러 가지로 마음은 우울해서 글자가 제대로 읽히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책을 적당히 읽었고, 아마도 앞으로는 괜찮아지겠지. 미친 3월만큼, 우울한 4월만큼, 의도치 않게 가라앉은 6월만큼 걱정되는, 매 해 항상 뭔가 큰 이벤트가 생기던 7월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나아지기는 할 것이라고, 책들도 다시 즐거워질 것이라고, 그렇게 일단 마음을 잡아 본다.

(늘 그렇듯, 추천 책은 진한 글씨)

2018-04

  • 재밌다고는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천재 작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글은 번역본으로 찾기 어렵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에세이 모음. 동명의 발랄한 이야기 및 글과 작가 이야기, 사전 이야기, 테니스 선수 찬양(…) 등의 에세이들 모음집. 어떤 주제든 굉장히 자세히 보고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유려하게 뱉어내는데 그 모습이 정말 (가끔은 읽는 사람이 부하가 올 정도로) 굉장하다. 그리고 그런 시선 뒤에 덮혀져 있는 것은 담담한 듯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대상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 한낮의 우울: 우울증에 대해 사회적, 심리적, 과학적, 역사적 측면 등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섬세하게 다룬 책. 그래서 주요 내용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인간 내면의 공포와 슬픔, 무기력함에 대한 이야기까지 내려간다. 자극적이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객관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지적이며 사려깊게 다루는데, 이 근본에는 저자의 단단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주관이 자리잡고 있다. 두께는 상당하고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그 가치가 충분했던 책.
  • 4월의 어느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사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동명의 단편 소설을 매년 4월마다 읽었다. 그러다 내가 이 단편의 남자 주인공의 나이-당시 이 소설을 썼던 하루키의 나이와 같은 32살-가 넘은 이후 부터는 잘 읽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던가 충동적으로 단편집을 샀고 문득 어제 생각이 나서 오늘 읽었다. 어쨌든 아직 4월이니까.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은 다들 흥미롭고 이 단편집 역시 그렇다. 초기 단편의 색이 제대로 나타나서 즐거웠다. 하루키는 분명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불편한 점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싫어하기란 어렵다. 특히 초기 단편과 수필들은. 이 책의 조금 긴 ‘도서관 기담’과 ‘캥거루 날씨’는 특히 그런 기대하던 느낌을 만빵 살려줘서 더욱 좋았다. 물론 원래 목적이던 단편은 이제는 외울 지경이고 그 동안 알 수 없이 죽어간 길고 짧은 마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의 빛은 너무나 미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금은, 분명, 슬픈 이야기다.

  •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어느 책 중독자의 책에 대한 찬양론. 물론 이 정도는 좀 과하다 싶고 나는 그저 아직 멀었고 전자책이나 문학작품들에 대한 생각도 나와는 다소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독서란 근사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는 너무나도 공감하고 같은 책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타인의 소중함이라든가 독서가 그나마 삶에 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다는 등의 생각을 활자로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밑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정신없는 독서 패턴에 뚜렷한 이유나 리듬 따위는 없다. 다만, 책은 어지간하면 다 좋고 대개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가능하다면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매일매일 책만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 이상도 좋겠다. 책 읽기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이동도서관 트럭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한 일곱 살 때부터 난 늘 이 모양이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태어나기를 이렇게 생겨먹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강박적으로 책 읽기에 매달리는 이유를 안다. 나는 다른 곳에 있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그래,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나마 합리적으로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책이 제시하는 세상은 그보다 훨씬 낫다. 가난에 시달리거나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 어느 애주가의 고백: 정말로 강렬하게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알콜 중독이 되었다가 금주에 성공하기까지, 자신과 일반적인 사례를 들면서 알콜 중독이 삶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술을 안 마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진지하게 토로한다. 분명 읽는 내내 맞아 우와 그러게를 계속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지만 역시 ‘드링킹’같은 폐부를 찌르는 강렬함까지는 가닿지 못하고 나는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라 다소 공감도 안 되고 술을 끊을 생각도 없고(중얼중얼)
  • 침묵의 봄: 살충제 및 인간이 마구잡이로 쓰는 화학 약품의 위험성은 지금은 그럭저럭 널리 퍼져 있지만, 그런 것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분명 센세이셔널했을 것이다. 무심코 쓰는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쉽고 차분하게 잘 쓴 에세이들.
  •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매우 중이중이하며 찌질하기 그지없는 연애소설. 사람들의 젊은 날의 연애에 갖는 공통적인 감정은 그럭저럭 비슷하고 그게 현재에 솔로며 SNS와 살짝 얽히면 더욱 비슷해지는가. 이게 뭐라고 서점에 쭉 깔려있어서 나는 왜 낚였는가.(…)
  • 영원성의 역사: 보르헤스느님의 초기 문학 토론집과 반쯤 소설같은 영원성을 다룬 책 두 권 합본. 문학 토론집은 아르헨티나 문학론은 흥미롭지만 그 이후 설명은 솔직히 어려웠다(역자 해설에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되어있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시간론은 늘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이건 소설이든 아니든 그러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보르헤스느님을 다시금 찬양해 본다.
  • 책 잘 읽는 방법: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책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야지 생각하고, 이런 책은 사실 그런 의무감을 부추기는 책 종류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불어 내 나름대로의 제멋대로 책 읽기(?) 방식이 있어서 이런 걸 읽어도 그다지 따를 생각도 없고. 하지만 뭐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술술 넘기면서 보기는 했다.
  • 차별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구분해서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구분 기준이나 대우 시에 불평등한 비하가 더해질 경우 이 것은 나쁜 차별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있게 설명한 책. 의도나 내용은 좋으나 한자어를 남용한 직역은 다소 불편했다. 원문을 안 봐서 더 뭐라고는 못 하겠지만 충분히 더 쉽게 읽힐 수 있었을 책이었을 수 있지 읺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길고양이의 건강/생애 등에 대해 여러 가지가 잘 설명되어 있어 일반 상식으로도 참 좋겠다. 길고양이가 아니다라도 그냥 애묘인들은 읽으면 좋을 듯.

2018-05

  • 키노의 여행 20: 슬슬 힘이 풀리지만 여전히 귀여운 이야기들과 맛이 가는 후기들은 참 좋은데…진짜 이거 끝낼 생각 없나봐… …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판사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 그간 읽었던 이 분의 칼럼들보다 통렬함은 약하지만 깔끔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서 가볍고 즐겁게 읽었다. 어쨌든 나도 꽤나 개인주의자여서 말이지.
  • 자정 4분 전(1-2) : 중의적 의미가 담긴 제목 아래 4개의 호러 중편이 실려있다. 정말 드라마 환상특급 같은 기묘한 이야기들. 잘 안 읽혔지만 이건 나의 문제고 흥미진진했다. 특히 작가를 다루는 편에서는 정말이지-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보르헤스느님의 그간 국내 미출간되었던 아르헨티나 문학의 지역적 특성, 언어 사용, 시인의 전기를 가장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세 권을 한 권으로 모았다. 우리가 아는 보르헤스는 매우 우주적(?) 작가지만 이런 글을 보면 얼마나 자신의 국가와 지역에 대한 이해와 생각과 애정이 엄청난 지를 알 수 있다(다만 나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특히 1권 부분은 넘나 어려웠다고 한다).
  • 슈뢰딩거의 고양희: 온라인연재부터 박수치면서 봤고 텀블벅 펀딩도 했고 와서는 아껴서 읽었다. SF단편만화모음인데 진지한 아이디어도 좋고 사건들도 좋고 이야기도 좋고 과학과 기술과 기계와 인간과 마법 모두에 하나같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와 장면을 만들 수 있다는 데 감동해서 다수는 이미 읽은 것임에도 아껴가며 읽었다.
  • 인생은 짧다 카르페 디엠: 하루하루의 삶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니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되 개인과 그 현재만을 위한 것은 아니도록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즐기라는 이야기의 책. 뭐 지금도 (좀 게을러서 그렇지) 적절히 글케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별 생각이 엄따…
  • 그해, 여름 손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의 원작. 소설은 영화와 끝이 좀 더 다르고 주인공 소년의 고민과 마음을 보다 농밀하게 담아서 약간 더 달콤한 맛이 난다. 무엇보다 절정에서의 아버지의 대사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무엇도 느끼면 안된다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

실컷 사랑하고 실컷 기뻐하고 실컷 슬퍼하고 실컷 아파하는 그 순수한 느낌들은 얼마나 찬란한가. 그 때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얼마나 눈부실까.

2018-06

  • 만화로 보는 지적이고 오싹한 현대심리학 : 그닥 지적이지도 않고(?) 1도 오싹하지 않은 귀엽고 가벼운 심리학책. 익히 아는 상식 정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냥 복습용으로 훑었다는 데 의의가.
  • 마케터의 일: 가볍고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다고 느낀 것은 아무래도 익숙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당한 겉멋에(?) 적당한 내공이 없이는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 덕에 휙휙 넘기면서도 쓸데없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어쨌든 다들 무언가의 마케터 아닌가.
  • 시월의 저택: 레이 브래드버리 버전 ‘시월의 마지막 밤’. 귀신이라는 존재를 긴 시간을 기억하는 서정적인 존재로 치환하면서, 이야기에도 그 특유의 귀여움, 따뜻함, 우아함, 애달픔을 담아냈다.
  • 인간의 그늘에서: 그냥 재밌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이 상세히 기록한 침팬지의 삶과 습성이구나…하고 읽어내려가다가 막판에서야 제목의 뜻을 깨닫고 자기 반성을 조금 했다. 나 역시도 인간의 시선에서 조금 떨어지는 영장류를 보고 있을 뿐이구나…하지만 조금 늦었다.
  • 춤추는 사신: 미메시스의 국내 작가 단편-삽화 콜라보 프로젝트. 프로젝트 의도도 좋고 책도 얇고 가볍고 소설도 좋았다. 전보다 쭉쭉 유연하게 이어져 나가는 느낌.‬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 세상의 모든 안주에 대한 찬송같은 에세이.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콕콕 박힌다. 다양한 음식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맛깔난지 근 이틀 간에 거의 유일하게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 삶의 낙이었다.
  • 치슐랭 가이드: 서점 온 김에 스윽 사 보았는데 잠시 커피마시며 구경할 겸 책을 폈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역시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스케일 크게 나가는 게(?) 채고며 치맥은 한국인의 소울푸드였던 것이다…
    1. 피보나치킨도 좀 실어주지.
    2. 아황주와 치킨 조합이라니 넘나 뒤통수 맞은 기분… 전에 마셔버린 아황주가 아쉬운 것이다…
    3. 집 근처 치킨집이 나와서 깜짝. 담에 기회 되면 가봐야지.
  •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 원체 이 쪽 취향이 아니어서 꾸역꾸역 읽었지만 그래도 나름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무난하게 읽었고 내용이 다 기억도 안 나지만 여러 모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던 투자에 대한 이야기들.
Written on June 30,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