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통계’라는 웃기지도 않는 아무말

연초는 커녕 벌써 1년이 반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웬 사주 타령인가, 싶지만, 어차피 아직 인생의 대략 반 정도밖에 안 산 시점에서 평생 사주는 분명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기는 개뿔.

물론 재미로 보는 사주는 좋아한다. 연말에 도는 무료 사주 사이트를 거의 매 해 이용하면서 ‘역시 올해도 망했군’을 중얼거리고, 특히 올해 나의 사주는 엉망진창 대잔치라는 건 사주를 얼치기로 보는 나도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의 드라마틱한 조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것은 사주의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다는 소리).요즘의 MBTI 유행도 그렇고, 사람의 유형이 정해져있고 삶도 정해져 있으며 이를 대충 파악한다는 것은 시대불문 재미있는 이야기다.

다만 사람들은 ‘재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과 ‘실제로 사용 가능한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재미가 있으면 좋아하게 되기 쉽고, 좋아하는 것은 자주 쓰게 되기 쉽고, 자주 쓰다 보면 믿게 되기 싶다. 이 중간 즈음에서 적당히 정신을 차리려면 마음을 단디 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을 단디 먹기란 쉽지 않고, 자꾸 변명을 하게 된다. ‘오늘 운동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가 갑자기 하품이라도 하면 ‘아 아쉽지만 웬지 조금 피곤해서 운동은 나중에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움 사이에 편안함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관성의 힘은 위대하고, 사람들은 편안하고 재밌는 것을 최대한 추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온갖 변명을 한다. 조금만 졸려도 피곤하니 쉬어야 하고, 할 일이 많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을 멈추고 싶지 않아 지금 게임을 멈춰봐야 일이 잘 안 될 거라고 중얼거린다. 많은 사람은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매우 능하다.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온 것 중 하나가 ‘사주가 통계’라는 말이 아닐까. 사주로 밥벌어먹고 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사주를 믿어버렸지만 그런 자신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허허실실하며 하는 말. 음양오행과 주역은 종종 학문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하다 보니 학술자료 비스무리한 것들도 다소 있어 웬지 진짜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합리성’을 자랑하고 싶을 때 얼마나 눈에 잘 들어오겠는가.

이를 반박하기란 매우 간단하다. 음양오행은 음양과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은 태양과 달, 오행은 물, 금속, 흙, 불, 나무 의 다섯가지 속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달의 주기는 종종 삐그덕거리고, 심지어 그것을 옛날에는 더더욱 예측하지 못해서 지금의 달력도 음력은 종종 날짜가 왔다갔다함을 안다. 오행은 더 하다. 무슨 먼 옛날 연금술도 아니고 5가지 요소가 세상을 이루고 이 것의 불균형에 의해서 사람의 삶의 바뀌는가. 에라이.

그래서 사주가 과학이라고 해도 웃길 판국에 심지어 사주가 통계라고 한다. 이는 아마도 사주의 근간이 되는 만세력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만세력이란 무엇인가. 만세력의 전신인 천세력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천세력이란 ‘다가올 100여 년간의 절기와 달의 대소를 미리 추산한 역서로, 1777년을 기점으로 하여 당시 왕의 향후 100여 년을 추산한 미래력이 결합된 역서이다. 『천세력』은 대개 조선시대 역서가 그렇듯이 매년마다 매 음력 월의 대소, 24절후의 입기일시, 매월 초1일, 11일, 21일의 간지가 한 면에 실려 있으며, 왕조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서라고 하니 매우 뭔가 있어보이지만, 달력이다. (….) 그것도 툭하면 고쳐야 하는 음력 달력이다. 물론 이는 농사를 위해서는 도움이 되고, 계속 날짜를 고쳐야 하다보니 약간의 조사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운의 상승하강 같은 것은 그냥 정말 미신과 소문, 자의적 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어디에 통계가 들어가고 빅데이터가 들어간단 말인가.

간혹 혹자는 ‘그래도 사람들의 삶이 누적되고 기록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한다.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그래서 빅데이터고 통계일 것이라고. 아마도 사주도 과학이네 하는 소리와 이런 생각이 합쳐져서 사주가 통계니 뭐니 하는 아무말이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단 그런 증거는 내가 알고 있는 하에서는 없다. 거기다 지금도 데이터가 치우친 상태로 수집이 되고 잘못된 통계가 세상에 넘쳐나는데, 그 당시에 수집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을 지 누가 검증을 하고 그걸 믿는단 말인가. 이런 걸 생각하면 이 것이 통계라고 하면 더욱 더 못 믿을 일 아닌가.

사실 올해의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올해의 사주는 엉망이니까. 이 결과를 떠올리며 무슨 일이 생겨도 아이고 부질없네 하고 흘리며 깔깔거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년에도 사주를 볼 것이다. 재밌으니까. 또 올해는 망했구나 하면서, 혹은 올해는 대박이라는데 왜 이럼? 이라면서 웃으면서 보겠지. 하지만 이런 것의 효능은 딱 여기까지다. 정말로 순전히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무말인 것을 알기에 그냥 가볍게 치부하는 것. 이런 것을 과하게 믿어서 괜히 불안해하거나 쓸데없는 소비를 하고, 혹은 남을 평가한다거나 하면 이는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굳이 애써 변명거리를 찾아가며, 여기에 자기의 생각을 더해서 멋대로 부풀려가며,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본인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자신의 적당한 합리성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사족. 관성에 거스르는 행동인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는 데는 굉장한 에너지가 들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힘들어한다. 나는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로 그런 사람 얼마나 되던가. 심지어 이 것이 타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반작용으로 인해 몇 배의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역풍만 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것도 그냥 다 지나간 테마를 일하기 싫고 운동하기 싫어서 핑계거리로 쓰고 있을 뿐이지, 이걸로 사람들이 아무말을 덜 하게 될 거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러 번 지쳤고, 이제 나에게 큰 관련이 없다면 보통 그냥 그렇게 살다 마세요라고 하고 싶다. 나는 기력이 다소 부족하고, 다른 데도 쓸 수 있는 내 기력을 사람들이 구슬려가며 낭비하게 했던 것도 이제 할 만큼 했다.

Written on July 28,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