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추가 지났는데 이제 와서 회고를 한다는 것도 참으로 우습지만, 그래도 이러다가 나머지 4개월도 그냥 날려먹을 것 같아서 짤막하게나마 올 상반기를 회고해 보기로 했다.
상반기는 그야말로 자유의 몸(?)으로 회사를 전전하던 시기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시기가 아닌 그런. 그 시기는 (모 소설의 첫 문단을 따서)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나날이였고, 어리석음의 나날이였다. 믿음의 시절이였고, 불신의 시절이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내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내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여러 회사에서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났지만 누구와도 생각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시절이었다. 새로운 일들을 한가득 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나의 한계에 대해 뭉뚱그려 깨달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할 일은 많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많은 듯 했지만, 끔찍하게 괴롭기도 한 시간이었다. 일을 쉰 적은 없었지만, 뭔가 이거다 싶은 일을 한 적은 없는 계절이었다. 그렇게 상반기가 흘러갔다.
물론 그 시기가 아쉽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분명 이 시기는 내 삶 중 최고의 시간 중 하나일 것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들이 점철된 시기고, 여러 멋진 분을 만난 것은 큰 소득이며, 나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시기였으며, 시야도 넓힐 수 있었던 시기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겠지만, 이럴 기회가 있다면 한 번은 해 보라고 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론, 단 한 번이다. 나에게 또 하라고 하면, 아니 글쎄요. 한 번, 반기로 족합니다.
아마도 이 시기의 이야기는 다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서술은 화려했지만 그래서 이 시기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상반기에는 신나는 이벤트가 많았다. 드디어 맨날 한 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봤던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정말 사람들이 왜 이탈리아 로마 노래를 부르는 지 알겠고 정신없이 다녀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왜 유럽에서 이탈리아를 가장 끝판왕이라고 하는 지 이해가 갔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재밌는 것들도 많이 했다. 소소하지만 신기한 경험들도 잔뜩 하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이 아쉬움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의 포텐셜에 상반기에 내가 한 일들이 너무나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 것이 내가 하반기가 한 달 반이 다 지나가도록 회고를 하지 못했던 이유기도 하며, 꾸역꾸역 이제라도 회고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상반기가 다이나믹해서…라고 모든 핑계를 대기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텐션이 뚝 떨어진 채로 생산성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겠는가. 사실 전반적으로 다 아쉽다.
- 일: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다. 3군데 정도의 회사에서 일을 했으며, 그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데이터를 보았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어디서든 시간적인 제약과, 비즈니스 및 회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제약과, 적응적 제약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서 내가 한 일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그리고 역시 단기적으로 회사의 데이터 분석에 기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이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따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대체 따로 정리할 것이 몇 개인가)
- 공부: 해야 할 공부가 산더미인데. 사놓은 기술서도 몇 권인데 제대로 본 게 거의 없다. 그나마 올 상반기에는 짧은 A/B 테스트 강의 하느라 관련 자료 조금 다시 뒤적이면서 본 게 거의 다인 것 같다. 물론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들은 익혀가면서 하기는 했지만 뭔가 며칠이라도 잡고 체계적으로 본 것이 없는 것 같아 넘나 아쉬운 것이다.
- 부업 (번역) : 아 뭐라 할 말이 없다 대체 나는 이 것을 왜 잡았는가… 나의 번역 속도가 이렇게 떨어지고 의욕과 체력이 이렇게 바닥을 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다이나믹한 상반기였다고는 해도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고 있어서 그저 할 말이 없고 이렇게 후기를 쓰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삶을 얼른 끝내고 얼른 속도를 붙여서 끝내고 싶기 때문인데 웬지 이렇게 정리 글을 써야 끝날 것 같단 말이다(그렇다 상반기가 아닌 7월 후에도 나의 속도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고 한다…)
- 운동: 상반기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유지가 되던 것이 한 달에 두 번 요가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런 것이라도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사실 요즘에는 출석율이 확 떨어졌다. 게다가 7월 들어 바뀐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째고 있다.. (이건 하반기 후기에도 이야기하겠지만) 걱정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운동이 전에 하던 것보다 훨씬 덜 격한 것이다보니 웬지 체력이 더 안 돌아오는 것도 같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그저 고민인 것..
- 글/발표: 원래는(내가 게으르다고 해도) 매달 글 하나씩은 쓰려고 했고 뭔가 발표자료 같은 거라도 만들고 싶었는데, 어차피 일만 겨우 하는데다 하는 일들이 외부인으로서 다른 외부에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거리낌이 생겼기 때문에 뭔가 주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런 데서 일하면서 내가 공부한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면 되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정신적으로 다소 치였고 생산성이 바닥이라서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글을 쓴 건 좀 긴 번역을 나눠서 써서(…) 였고 독서 후기 같은 걸 제외하면 만족스럽게 쓰지도 못했다. 그나마 작게나마 두 건이나 발표를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사람들 만나는 것도 편하지 않아서 사람들 많이 모일 만한 곳은 잘 안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좀 더 움직여야지.
- 독서: 한 번 집나간 독서력은 돌아오지 않아요. 물론 간간히 게임을 많이 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집나간 독서력은 돌아오지 않는가 한 번 책을 잡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가. 이제 아이패드 미니도 샀으니 좀 더 책을 읽어야겠다(그리고 아이패드는 게임머신이 되는데…)
하반기는 또 상황이 바뀌었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고 있다. 하반기는 또 어떤 다이나믹하고 신기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 그리고 그 시간 속의 나는 어떠할 지. 좀 더 만족스러울 지, 아닐 지. 그래도 기대가 되는 것을 보면 분명 마냥 아쉬운 시간이 되지만은 않을 것라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