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것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버린 순간처럼 말이다.
- 스티븐 킹, [파인더스 키퍼스]
보통은 이런 결산은 크리스마스때쯤 집에서 혼자 콕 틀어 박혀서 느긋하게 하기 일쑤인데, 어쩌다 보니 올해는 좀 일찍 마치게 되었다. (모 독서 모임에서 송년회를 맞아 읽은 책 결산을 하자고 해서…)
늘 그렇듯이 한 해의 마무리에서 가장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쓰며 그나마 사람들이 매년 관심을 일인분이라도 추가해주는 책 결산 시간이 돌아왔다. 물론 남들에 대한 이야기는 핑계고 나의 아름다운 취미생활이자 보석들이니 이를 몇 번씩 들여다보고 닦아주듯이, 매년 한 번씩 거풍을 하고 읽은 책을 정리해 주는 것은 당연한 작업인 것이다. 특히 책 연말 정산은 무엇보다 일단 내가 재밌어서 하는 것이기도 하고 요즘처럼 기억력이 가물거릴 때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싹 갈무리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은 각박해지고 마음은 메말라 가며 주변은 점점 평행우주로 갈라지는 것처럼 orthogonal하게 떨어져 나가서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착각 같은 때에는 역시 마음을 줄 것이라고는 이야기들 뿐인 것. 그래서 이야기에 대한 의존도는 날로 늘어가는데 이에 반비례하게 나의 머리는 날로 나빠져가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다.
일종의 정신적 소화불량 상태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올해의 책 결산이다. 두근두근.
범위
올해의 책 관련 땡땡땡
올해의 책 관련 이벤트
- 책에 이름을 싣는 여러 가지 방법 올해는 안타깝게도 번역을 했다던가 하는 건 없다…아 갑자기 뭔가 조금 허전해지고요. 하지만 책 추천사를 썼다! 추천사 같은 거는 스티븐 킹이나 스티븐 킹이나 스티븐 킹 같은 사람들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헬로 데이터 과학]이라는 좋은 책에 추천사를 싣는 기회를 얻었다..(책에 이름 실리는 거 넘나 좋아함. 좋은 기회들을 주신 저자 및 역자 분께 다시금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올해도 역시- 모 출판사의 스** 킹님 책이 나올 때마다 내 평이 광고용으로 실리는데 이건 참 늘 기분이 좋으면서 오묘하다)
올해의 책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예전 리뷰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이 책은 안 올릴 수 없겠더라. 그냥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박수를 날리고, 어쨌든 읽게 되어서 굉장히 영광이라고 생각되는, 위엄 넘치는 책이었다. 그래, 고전이란 이런 거지.
올해의 비문학
- 틀리지 않는 법: 보통 책을 권할 때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다보니 잘 권해주지 못하는 편인데, 이 책은 정말 읽고 넘나 좋아서 취향따위 무시하고 열심히 권한 책이다. 일상에서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어렵지 않고 좀만 익혀두면 매우 유용한데, 이 것이 괜히 어려워 보여서 설명하기는 넘나 힘들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역할을 매우 충분히 한다. 나는 업이 업이라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고 믿었는데, 이 책을 보니 부족한 것도 너무 많았다. 몇 번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다.
올해의 작가
(올해도 루이스 캐럴이나 스티븐 킹을 하면 안 되겠지…) 올해 초역 작품이 나오거나 절판된 책이 재간되거나 해서 작가 이름 믿고 지르는 책들이 넘나 늘어나서 마음은 기쁘고 지갑은 슬프지만, 역시 이런 데는 올해 제대로 발견한 작가를 고르는 것이 인지상정. 그런 의미에서 옥타비아 버틀러. 흑인 여성 SF작가라는 이유로 이런 끝내주는 소설들이 제대로 소개도 되지 않은 것은 말도 안 되지 않나. 이 분 책들이 국내에 제대로 나오게 되어서 기쁘고요. 나오는 김에 계속 쭉.
올해의 만화
(그래픽 노블이나 만화 외에 따로 분류되는 책이 아니면 보통 책 읽은 리스트에 넣지는 않는다. 내가 만화책까지 다 넣으면 대체 그 읽은 책 수의 뻥튀기는 어쩔.) 좋은 만화책도 많았지만 여전히 와카코와 술(5,6)이 넘나 강세인 것…
올해의 잡지
(역시나 잡지류도 책 리스트에 넣거나 카운트는 하지 않지만) 긴 말 필요없고 스켑틱. 여러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계간지라 부담도 없고 전자책으로도 있어요.
올해의 Top 8
(Top 10에서 위의 두 권 제외. 이거 고르기도 하도 힘들어서 다 빼면서 시름시름…왜 나는 매년 10권을 뽑으면서 고통받는가.. 늘 그렇듯 순서는 상관없다. 또한 땅 속 나라의 앨리스, 멋진 신세계, 제 5 도살장같은 초초초 걸작의 재번역판은 이미 제 평생의 역작이므로(…) 굳이 넣지 않았다. )
- 사피엔스
- 뉴로맨서
- 혼자가 되는 책들
- 침묵의 뿌리
- 파인더스 키퍼스
- 꿈꾸는 책들의 도시
- 아트 오브 피너츠
- 꼬리 많은 고양이
세상은 넓고 좋은 책은 많아서 아직은 좋은 책의 숫자만큼은 최소한 살면서 의지가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니까, 아직 삶의 희망이 남아 있어서 기쁘다. (늘 그렇듯 사놓고 못 읽은 책들도 아직 쌓여있고….)
이번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 살펴보자. 인파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것, 군중, 큰 목소리, 소음, 질질 끄는 대화, 파티, 특히 칵테일 파티, 담배 연기를 비롯한 흡연, 요리 첨가용 이외의 술, 마멀레이드, 굴 미지근한 음식, 회색 하늘, 새의 다리, 새와의 접촉 등을 나는 싫어한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뜨거운 우유의 맛과 향이다. 반면에 햇살, 사과, 거의 모든 종류의 음악, 기차, 숫자 퀴즈 등 숫자와 관련된 모든 것, 바다에 가는 것, 목욕, 수영, 침묵, 잠 꿈, 식사, 커피 향, 계곡에 핀 백합, 거의 모든 개, 연극 관람 등을 좋아한다. 더 거창하고 ‘폼 나게’ 목록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진짜 내가 아니다. 나는 참된 나의 모습을 따르고 싶다.
- 아가사 크리스티, [아가사 크리스티 자서전] 중
올해의 분기별 읽은 책 감상은 다음과 같다.
또한 2015년의 책 결산도 궁금하신 분은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