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분기에는 이래저래 책을 많이 못 읽었다. 큰 일이 너무 많았다. 요즘은 시간이 많으면서 정신도 없다. 뭔가 내가 잘 하는 건지 모르겠고 살면서 확신은 점점 줄어들기만 한다.
그러다보니 집어드는 책들도 자꾸 아주 가벼운 책-여행책 같은 것들-을 집어들게 되고,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책이 적은데 리뷰할 책은 더 적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럴 때의 대피소는 사실 책인데. 좀 더 많이 읽으면 괜찮아지려나. 그런데 사실, 책을 읽으면 그냥 재밌고 좋은 것이지 책을 꼭 많이 읽을 필요도, 깊이 읽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많이 읽힐 때는 많이 읽고 천천히 읽힐 때는 천천히 읽고…즐기는 것에 애초에 부담같은 것 가질 필요 있을까.
늘 그렇듯, 추천도서는 볼드체.
2018-07
유피디의 독일의 발견: 독일의 여러 도시에 대해 짧고 인상적으로 특징을 정리해 둔 책. 간단히 여러 도시들을 훑어보기에 좋았다.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밀라 주택 : 3년전 바르셀로나에서 본 까사 밀라의 기억이 새록새록.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완전사회 : 한 남자가 냉동인간으로 보존되었다가 깨어나보니, 기술적으로,문화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세계가 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만 남은 세계. 하지만 그래도 인간사는 어쩔 수 없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 길을 도모하게 되는데.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설정, 꽤 깔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는 굳이 나라를 구분하지 않고 어쩌면 시대도 구분하지 않는다.
문맹: 읽다가 너무 힘들어서 마지막권은 결국 못 읽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활자 중독이고 예민한 사람이 세파에 시달리면서 변해가는 마음을 간결하게 그려냈다. 저 작품처럼 힘들지는 않고 잘 읽히지만 어떤 큰 느낌 역시 없어 좀 아쉬웠던.
2018-08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소설가이자 연구원으로 트위터에서 ‘곽재식 속도’로 유명한 척도의 주인공이신 분이 쓰신 글쓰기 책. 주로 소설 쓰기에 대한 내용이고 본인의 천재성과 성실함을 어필하고 계시는-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은 이런 부분이 참 어쩔 수 없다- 듯 하지만 그래도 꽤 일리있는 실용적인 이야기들도 많고 무엇보다 실용서도 엄청 속도감있게 읽히게 하는 필력을 자랑하시는 통에 재밌게 읽었다.
문학의 도시, 런던: 런던을 배경으로 수많은 문학이 탄생했고 수많은 작가들이 울기도 웃기도했던 것에 대해 상세히 짚었다. 물론 내가 이런 곳을 하나하나 돌아다닐 정도로 영국 문학에 애정이 넘쳐흐르는 것은 아니고 모르는 작가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과 영국문학은 사랑이니까요.
일단 오늘은 나에게 잘합시다 : 도대체씨의 아무말 대잔치 일상 에세이. 귀엽고 어떻게 보면 냉소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따뜻한. 무작정 괜찮다고 하는 것보다 이런 쪽이 훨씬 위로가 된다. 타인의 마음은 그대로 놓아두고, 어차피 망한 생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역시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하는 거지’라는 고민이 들 때는 ‘그 것을 안 해도 다른 더 나은 걸 하고 있지는 않을 거에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있으려나 서점 : 책에 대한 다양하고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책에 대한 애정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상상들. 이런 서점이 정말 있으려나 서점.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책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책한테 은혜를 갚기 위해 매달리기도 한다(서점에 취직해야하나…(아님))
언제 할 것인가 : 삶의 타이밍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언제나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가 아니라 시간을 하나의 일관성있는 전체로 바라본다는 관점에 동의하며, 이런 관점에서의 타이밍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모든 사건은 결국 시계열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메리, 마리아, 마틸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모녀의 여성 주인공 단편 세 개를 모았다. 주체적인 여주인공과 M으로 시작한다는 공통점, 사랑 이야기 중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전적 소설이라는 메리는 솔직히 좀 지루하고(읽는데 오래 걸렸다…) 마리아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너무 많이 했지만 그 와중에 미완성이고 마틸다는 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분명 읽어볼 만은 한데 음.
2018-09
추남, 미녀 : 올해의 아멜리 노통브판 보졸레 누보는 역시 거기서 거기였다. 간만의 해피 엔딩이지만 역시나 엔딩보다는 똑똑한 사람의 생각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데에 극도로 신경쓰는 특유의 스타일.
도널드 노먼의 UX디자인 특강 : 많은 곳에서 simple is the best 를 외치지만, 무작정 단순한 것만은 답이 아니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결국 복잡함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이런 불편함을 덜 느끼면서 복잡성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할까. 그리고 사용자는 이에 대해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이에 대해 (간혹 아무말로 느껴지는 내용도 있고 사족도 있지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한 책.
과학자가 되는 방법 : 조카가 ‘과학자와 인터뷰 숙제를 해야 하는데 이모 아는 사람 없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 비 몰랐다. 과학자의 업은 명확하나 직은 명확하지 않고, 사실 ‘연구원…?’하고 어렴풋하게 생각할 뿐이다. 이 책은 국내외 이공계 박사와 그 이후의 테크트리를 꽤 담담하면서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본인이 이 안에 몸담고 있으면 좀 혈압오를 일도 많았을텐데(…) 그 객관성에 박수를 보내며, 다소 공대쪽과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과학자’에 관심있다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고 싶고 저 조카에게도 사줄까 생각중이다.(여기서 ‘데이터 과학자’같은 이상한 조어는 꺼내지 말기로 해요)
왜 맛있을까 : 음식이란 어쩌면 매우 개인적이며, 다양한 감각과 기분에 좌우되는 예술의 극치일 수 있다. 이런 음식의 맛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 수 있는 지를 음식 외적인 면에서 다양하게 연구한 결과를 보여주는 책. 가끔은 무리수같기도 하고 과한 일반화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진진한 책이다.
풍선인간: 찬호께이의 초기 옴니버스 단편집. 기이한 능력으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 이야기. 펄프픽션(?)느낌으로 썼다지만 특유의 흡입력은 이런 가벼운 이야기에서도 유효하고 단순하지만 군더더기없으며 꽤 개운한 느낌이 들어 타임킬링용으로 손색없는 신나는 소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링크로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