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책을 잘 안 읽고 있다. 얼마나 안 읽냐면 내가 보통 3달간 40권이 되면 3달만에 쓰고 아니면 4달마다 쓰는데, 4달이 다 되도록 40권은 커녕 30권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사노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후후후후. (그러니까 프렌즈타워만 좀만 더 적게 해도(…).)
어쨌든 그래서 올해는 덕분에 간만에 4개월마다 리뷰를 올리게 되었고 그 와중에 리뷰 올릴 책은 이래저래 더 적지만 그래도 세상엔 여전히 훌륭한 책 넘나 많은 것이다.
(늘 그렇듯 굵은 글씨는 추천 도서. 추천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재밌어도 추천 안 하는 경우도 있고 뭐 그러합니다.)
2019-01
뉴욕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뉴욕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기본적인 가이드북이자 에세이. 하지만 어느 도시든 애정이 담겼다면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테고 나에게 뉴욕은 영 애정이 안 가는 도시고 그 건 이걸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함정.
팬츠드렁크: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이라더니 별 게 다 나와. 적당한 맥주 한 캔 집에서 편하게 마시는 건 굳이 핀란드가 아니라도 좋아요. 뭐 책은 예뻐서 눈은 즐거웠다. 끗.
고양이가 봉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우리집 고양이는 왜 이럴까. 의 제프리 브라운 버전. 귀여워…
제 0호: 에코님 소설 중 가장 쉽고, 가장 짧고, 가장 특징 없는 책.(…) 급하게 마무리를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지만 막판 1/4의 장광설(?)은 에세이 읽는 기분도 들고 즐겁고 무엇보다 여전히 이 분의 부재가 아쉬웠다.
나는 왜 쓰는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짧았던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 글은 참 잘 쓰고 오웰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울 책.
2019-02
유리 감옥: 하이스미스느님의 심리 서스펜스는 늘 훌륭하고 이 소설의 감옥 묘사도 근사하며 흡입력 또한 굉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내의 외도와 찌질한 남자 주인공 구조 좀 지칩니다…;-; 다른 구조인 하이스미스님 책 원합니다…
프리랜서 가이드라인: 주니어 SI쪽 프리랜서들에게는 꽤 유용할 듯. 세금 등 도움이 될 부분은 열심히 읽어보았다. 무료 이북.
마티 ,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핀란드에서 온 마티: 점점 개인화되고 서로에게 폐끼치기 싫어하다보니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나는 살기 편하고 핀란드인들이 많이들 그랬나보다.
양자 혁명: 천천히 읽어도 이론 이야기는 이해하기 좀 힘들었지만 그냥 역사와 유명한 솔베이 사진의 이야기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이야기는 많이 들아도 와닿지 않던 주제에 아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마음이 안 좋을 때 딱 적절한 위안이 되는 책을 만났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존감 하락, 애착 불안, 우울함이지만 사람이 간혹 균형이 안 맞을 때 적절히 부드럽게 끄덕거리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비전 vol.1: 마블의 비전은 (어디서는 사라졌지만) 사실 가족을 이루어서 잘(?) 살고 있었고 이런 가족이 인간 사회에서 사는 것은 외적,내적 갈등이 당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가족사, 어른, 청소년, 초능력, 소수자에서 나오는 사랑, 가족간 갈등, 초능력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기이한 갈등, 범죄, 음모가 모두 버무려져 있는데 그럼 그 이야기는 웬만해서는 재밌지 않겠는가.
이 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 언제나처럼 우이하면서도 할 말은 분명히 하는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명명’과 ‘꾸준히 말하기’, 기존의 권위를 깨뜨리기 위한 이야기의 힘에 대해 여러 시선에서 끊임없이 이여기를 하고 있고, 그간 힘이 없던 무언가를 정확히 이름붙여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2019-03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 : 영국의 말 잘하고 글 잘쓰는 경제학자 팀 하포드가 현대 경제에 영향을 미친 50가지 발명을 골라 간단하게 설명한 팟캐스트를 모아서 책으로 낸 것.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짧고 가볍고 몰랐어서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
경험 수집가의 여행 : 앤드류 솔로몬이 25년간 다양한 나라를 다니면서 그 당시의 모습과 생각을 취재한 여행기 모음. 엄청나게 마음을 움직이는 서문을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여러 나라의 모습들이 진하게 파고든다. ‘한낮의 우울’에 실리거나 취재 배경 이야기들도 들어있어서 더 좋기도 했다.
팩트풀니스 : 전부터 목빠지게 기다렸고 나왔길래 바로 샀는데 정말 즐겁게 읽었다. 여러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하아 이쯤 되면 정말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올해의 책 후보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도 데이터도 너무나도 잘못 보고 있는 점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 조곤조곤 뼈를 때리는 책. 쉬우면서도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 감동 만빵. 근본없는 와중에도 아직까지 내가 데이터 업계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내가 그럭저럭 사실충실성(factfulness)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인가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고 생각했다.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 : SF를 보면서 들 수 있는 의문들을 SF작가와 과학자와 관련 종사하시는 분들이 매우 쉽게 문답식으로 풀어낸 이야기.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다. (그리고 나의 질문도 실렸지…후후후후)
2019-04
계획된 불평등 : 영국에서 러브레이스와 튜링과 배비지가 있었음에도 계획적으로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전산의 발전이 더뎌지는 모습을 팩트로 콕콕 짚어가는 책. 노동 시장이 주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척되고 마치 그게 자연스러운 양 떠들지만 사실은 그저 구조적 불평등이고 그로 인해서 바보같이 손해보고 살면서도 그게 자기들에게 좋으니까 꾸역꾸역 버티는 사람들. IT업계 사람들이면 정말 교과서로 읽어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고 그 외에도 정책 관련 사람들 등 여럿 읽히고 싶은책이다. 정책이 얼마나 바보같으면 산업이 고꾸라지는 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 작가가 작가고 엄연히 에세이인지라 본인의 시각이 꽤 반영되어 있지만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깊이있게 넘나들면서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거기다 추천 리스트도 굉장히 좋아서 장르 입문서로도 흥미로운 예술 에세이로서도 충분하다.
행운에 속지 마라: 어어어엄청 오랜만에 다시 읽음. ‘블랙 스완’을 쓰기 전의 저자가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트렌드를 보면 안 된다고 다각도로 화내면서 본인의 잘난 척 하는 이야기. 재미는 있지만 어수선해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낸 에세이라는 생각 이상은 들지 않고 좋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을 조금 더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쓸 이야기도 의외로 적고 특히 뒷부분은 그 주관적 논점이 좀 실망스럽기도 하다.
마케팅이다 : 할 말이 많은 것 같은지 내용이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해 다소 어수선한 느낌도 조금 든다. 하지만 결국 기본 골자는 명확하고, 기본에 충실한 이야기. 늘 기본은 옳고 알아두어서 나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