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21/10/01~2021/12/25)
올해는 살다보니 책도 써보고 인터넷 서점에 내 페이지가 올라가보는 일도 겪어봤다. 역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늘 그렇듯 추천은 굵은 글씨.
2021-10
- 프로젝트 헤일 메리 : 굉장히 밝고 씩씩한 지구와 행성 구하기. 단순하고 밝은 주인공과 외계인과의 우정, 목적은 개인적이었으나 결과는 전우주적. 거기에 적당한 개그. 누구나 좋아할 이야기고 영화화되면 잘 팔리겠으나 책은 너무 길었다(…).
- 규칙 없음 :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를 자랑하는 내용이고 좋은 재즈밴드의 이야기지만 역시 성향 맞는 능력자들을 모았다는 것이 키이자 디폴트인 이야기. 읽기는 편했고 흥미로워서 볼 만은 한데 내용은 저게 다다. (물론 중요하지만)
- 꼬마 니꼴라와 그에 관한 모든 것 : 꼬마 니꼴라 시리즈를 예쁘게 조각조각 새로 오려모은 플랩북. 캐릭터별 장소별 이야기가 크고 예쁘게 모여있는데 모든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히 떠오르는 게 어릴 때 읽었지만 이 시리즈 꽤 좋아했었나보다.
- 댈러웨이 부인: 뭐랄까 이런 생각의 흐름 류는 잘 읽는 편이고 런던 여기저기 나와서 매우 반가웠지만 아앗 하고 정신을 차리니 책이 끝났다.(…)
- 욕구들 : 사실 예전에 다른 제목으로 나온 절판된 버전을 읽었지만 책을 도저히 갖고 있을 수 없는 제목과 표지였는데 새 번역에 깔끔하게 잘 나와서 다시 사서 읽었다. 여성의 여러 비틀린 측면을 공허함이란 주제로 묶다보니 약간 어수선하지만 슬프고 따뜻하, 자신을 채워가는 인상적인 문장들.
- 아내는 부재중: 짧고, 몽환적이고, 깔끔한 좋은 소설이지만 그 스페인-중남미 문학의 묘하게 끈끈하고 습한 분위기가 너무 명료해서 나는 힘들었다(이유를 알 수 없이 취약함). 열심히 아시아-미국 영화로 상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소설이 잘 쓰여진 탓에 실패했다.
- 2030 축의 전환: 인구의 변화나 기술 변화 같은 거에 대해 꽤 있어보이는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글. 광고는 대단했지만 너무 희망찬 미래라 인상이 크게 남지는 않는다.
-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 제목이 길고 재미없게 생겼으며 딱딱한 면이 없을 수 없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이야기 깊이도 있으면서 사람들의 기대치와 오해를 잘 잡아내는 좋은 책이었다.
2021-11
- 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어슐러 르귄의 (아마도) 후기 에세이 모음집. 문학과 세계에 대해 단단하고 우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몇 안 되는 서평 중 읽은 책이 하나도 없다는 건 2% 슬프지만(…). 다른 데서 다른 제목으로 인상적으로 읽은 ‘여자 어부의 딸’이 있어서 좋았다.
- 아침이 들려주는 소리 : 밝고 예쁜 그림책. ‘오늘’은 아직 쓰지 않은 멜로디에요.
- 등대로 : 길고 정신없는 사람의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일관적이지 않아 더 자연스러웠고 따뜻하고 우아했다.
- 범죄 캘린더 : 단편보다 장편이 훨씬 나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엘러리 퀸의 단편집이지만, 오랜만에 읽는 고전추리는 그 나름의 귀엽고 상쾌한 맛이 있지.
- 에피타프 도쿄: 도쿄의 과거와, 가상의 이야기와, 현재와, 영원과, 종말이 끊임없이 교차해내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빛나는 문장 사이 간의 구멍을 도쿄에 대한 이미지로 메우고 있다보니 도쿄를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면 중간에 단절구간이 계속 생겨서 아쉽다.
- 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책은 종종 머리 식힐 겸 보지만 늘 재미없다. 만화도 없고 공감도 잘 안 되고.
- 피라네시 : 기대치가 커서인가 기대보다 현실적이고, 기대보다 캐릭터가 심심하긴 했지만, 고전적이면서도 우주적이면서 내내 마음에 에셔의 other world 시리즈를 그리게 했던 세계의 근사함과 시공간이 오버랩되면서 남는 우아하고 애틋한 여운은 매우 인상적이고 내 취향이라 쉬이 휘발되지는 않을 것 같다.
2021-12
- 오리 집에 왜 왔니 : 어쩌다 오리와 같이 지내게 된 이야기를 만화로 귀엽게 엮었다. 그림은 귀엽고 이야기는 사랑스럽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마침내 런던: <채링크로스 84번지>의 핼레인 한프가 유명해진 뒤의 런던 방문기. 사실 크게 흥미로운 내용은 없지만 80년대 런던의 모습을 보는 게 소소하니 괜찮고 전작 책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숨은 부록 선물같은 이야기. 이상하게(?) 런던은 늘 좋았던지라 런던 가고 싶다(널부렁).
- 업스트림 : 소설 읽는 중 짬짬이 읽으려다 생각보다 재밌어서 후루룩 다 읽음. 일이 일어난 뒤에 해결하는 것보다 그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이를 위한 데이터와 시스템의 중요성, 규모에 따른 차이를 꽤 설득력있게 이야기함.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해봐야 할 게 은근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책인데 의외로 건질 게 많았다.
- 올랜도: 나는 버지니아 울프와 맞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다른 책과는 스타일이 더 다르고 재밌을 거 같았는데 더 혼란스럽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나마 뒷부분에 가서는 좀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지만 역시 삶이란 부질없고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여기저기서 추천하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국의 여성 이라는 것이 원인인 우울증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분명 필요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