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라는 것을 크게 세우지 않은 지 꽤 되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그 해 연말에 신년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을 일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소한 것들(‘꿈의 집’ 게임을 지운다거나)은 바로바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한 해 어땠는지 한 번 돌아보면서 어떻게 또 살아냈구나 하고 다독이면 되는 잡설같은 후일담이나 적어내려갈 뿐이다.
힘든 해였다. 물론 나아지지 않는 COVID-19(이하 코로나)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은 어쩔 수 없고 올해의 나의 삶은 꽤나 꼬였고 지난했다. 상반기에는 업무 자체가 피곤하지는 않았으나 회사생활이 피곤해서 사람들에게 쉬고 싶다고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고 그러다 더욱 안 좋은 상황을 선택했지만 덕분에 지금은 꽤 잘 쉬고 있으니 이것이 사필귀정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 코로나 탓을 하고 싶지만 결국은 사필귀정.
올해의 나의 유일한 패악이라면, 내가 나를 덜 믿었다는 것밖에는 없다. 내가 나를 믿었더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내가 잘 몰라서라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했던 선택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너무나도 크게 깨달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것을 알아챈 이후부터 나는 나를 좀 더 믿고, 나 자신을 덜 의심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의 아쉬운 때는 있었지만 딱히 내가 한 것에는 후회가 없는 자신이 있다.
실수라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개선을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반기의 종료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겹쳤을 뿐, 그다지 나쁜 기억은 없다. 좋은 분들과 즐겁게 잘 지냈고, 잘은 모르지만 다들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좋은 동료 좋은 리더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는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기회가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지만 역시 모든 일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하반기에도 잠시 악재였지만 덕분에 새로운 좋은 분들을 만났고, 옅은 접점이었지만 다들 잘 지내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접점은 모두 굉장히 나약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코로나에는 재택근무와, 수많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쉰다는 명목 하에 그야말로 칩거의 나날이었다. 조심한다는 이유로 딱히 일이 없으면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원래도 사교성이 0에 수렴하는 사람이다보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지도 않은 채 보내는 날이 늘어만 가는 은둔하는 독거노인 모드가 되었다. 이런 삶은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싶은 순간이 계속된다. 사회적으로 소속된 곳이 없이 지낸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덕분에 잘 쉬었다. 작년에 이은 재택근무로 잠을 많이 자면서 만성두통과 위산 역류가 사라졌다. 물론 하반기에 잠시 불면증이 도지니 모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수면부족과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임을 새삼 깨달았고, 프리랜서를 가장한 백수 모드로 들어서면서 다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사회 생활의 해로움을 다시금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로또도 안 되었으니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자잘한 일을 자잘하게 계속 하는 통에 백수라고 해도 나름대로 바빴다 + 일을 그만 받고 싶어서 더욱 바쁜 척을 하기도 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이런 때가 처음은 아니어서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정말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과로사는 하지 않기 위해 자는 시간도 충분히 마련해두고, 날이 이렇게 추워지기 전에는 꾸준히 달리기와 요가도 했고(그러다보니 여행가서도 아침에 조깅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써), 매우 널럴한 시간표를 짜서 (널럴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지키고 살았다(그러다 밀린 일도 있다는 것은 비밀). 자잘하게 보고 싶은 전시도 다 챙겨서 가기 시작했고, 공연도 다니고, 책은 별로 안 읽었지만 온갖 모바일 퍼즐게임은 열심히도 했다. 평소보다도 넓은 곳의 사람들을 멀리서 옅게 보았고, 나를 더 가까이서 많이 보았다. 좋은 시절이었다.
백수로 그래도 어느 정도 일을 하면서 보낸다는 것은, 과거에 대해 많은 감사를 하게 되는 시간의 연속이다. 사실 올해의 이벤트인 [데이터 분석가의 숫자유감]도 추천해 주신 분과, 연재를 같이 진행해주신 분들과, 연재를 하면서 마감에 고통받던 작년의 내가 있어서 나왔던 것이다. 자문이고 인강이고 소소한(?) 일거리와 문의가 계속 있었던 것도 과거의 내가 여기저기 긁고 다닌 것들과, 과거의 나를 나쁘게 보지 않았던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반 정도밖에 준비 안 하고 애드립으로 넘긴 것도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 애드립할 거리를 쌓아둔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너무 과거를 깎아먹고 살아서 이제 파먹을 옛것도 안 남았구나 싶은 생각도 종종 든다.
사람들을 잘 만나지는 않았어도 아주 가끔 얼굴을 보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고,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게 되는 시절이었다. 이렇게 1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사실 계속 놀고 싶다(…).
하지만 로또는 되지 않았고 마통에는 한계가 있으니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지 않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고마운 시절.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푹 쉰 다음에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야겠지요.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너무 푹 쉬면서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회사에서 속 끓이며 살던 것이 몇 달이나 지났다고 정말로 전생의 기억같아, 내가 그러는 모습이 이제는 상상조차 잘 가지 않지만,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어서냐면 그건 아니고, 어떻게든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최선만 다 하면 된다. 잘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고, 내가 꼭 ‘잘 하는 사람’이 될 필요도 그다지 모르겠다. 나를 부정하면서 무언가를 하게 되거나,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그럴 일만 없게 해나갈 생각이다. 소소하게 하고 싶은 것들은 조금 있지만, 그런 것은 좀 더 천천히 이야기해도 될 일이다. 상황은 빨리 변하고, 내가 내다볼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백지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새해에도 그냥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마음고생을 덜 하면 좋겠지만, 그 것은 새해가 되고 상황이 그 때 그 때 주어져 봐야 아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