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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사람이 틀릴 리 없잖아요? –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에 관하여

“요즘 그거 안 보면 대화에 끼기 힘들다니까.” “사람들이 다 그게 맞다던데? 맞겠지 뭐.”

익숙한 말이다. 다수가 선택했고, 다수가 소비했고, 다수가 동의하며, 다수가 알고 있다는 건 꽤나 믿을 만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따르다보면 간혹 마음 어딘가가 꺼림칙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게 정말 내 선택인지 알 수 없어져 버린다.

이른바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argumentum ad populum)’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그 말이 옳다는 착각. 사실 여부가 아니라, 믿는 사람의 수로 진위를 결정하려는 논리의 비약이다.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애매한 아침 시간대에 TV를 틀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광고를 생각해보자. “100만 명이 선택한 뫄뫄!” 라는 문장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첫째, 100만 명이 선택했으니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 둘째, 당신도 그 대열에 올라야 한다는 압박. 하지만 실제 효능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 찾아보기 어렵고, 정작 소비자 후기나 수치는 마케팅으로 포장된 결과일 때가 많다.

조금 더 노골적인 예도 있다.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불법 다운로드 링크가 공유될 때마다 이렇게 댓글이 붙는다. “어디어디에서 받으세요” “여기 다들 이거로 봐요.” 다수의 타인은 도덕적 판단을 대체한다. 불법임을 알고, 저작권으로 누군가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을 알면서도 다수가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모두가 하면 괜찮다는 믿음. 그 믿음은 논리와 윤리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덮어준다.

미국의 유명 배우 제니 맥카시는 한때 TV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폐 아동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백신 이후 아이가 변했다고 말할 거예요.” 이 발언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다수의 불안과 직관을 진실의 근거로 내세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관련 연구는 백신과 자폐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지속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언은 대중적인 공감을 얻었고, 실제로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숫자가 많을 수록 그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다수가 믿는다는 감각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정당화 장치가 된다.

이런 식의 논리는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마주친다. “다들 쓰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요?” “지금 나에게 동의한 사람들을 다 바보로 만드는 거예요?” 이런 말들은 논리적 정당성보다 감정적 방어에 가깝다. ‘다수가 그렇다’는 사실이 판단을 대체하고, 개인의 판단을 흔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약하고 타인의 지지에 목마르다.

하지만 다수가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믿는 사람이 많다는 건, 어떤 의견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일 뿐 ‘옳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간혹 논리적 판단은 고립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박수칠 때 조용히 손을 내리는 일, 모두가 같은 쪽으로 향할 때 잠시 멈춰 반대편을 바라보는 일. 모두가 비슷한 걸 공유할 때 그게 모두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동참하지 않는 것. 그건 어쩌면 불편하고 고독한 일일 수 있다. 다수의 타인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견디고 정말로 본인의 ‘생각’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이건 정말 내 생각이 맞을까?” “다들 동의해주는데 이게 정말 내가 제대로 생각한 게 맞을까? ” 남들이 맞다면 나도 맞다고 믿고 싶고, 남들이 하면 나도 생각 없이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많은 것이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편안함과 즐거움이 과연 나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 관성을 조금만 더 조절할 힘을 기르고 싶다. 모두가 믿는 것이 아닌, 내가 믿는 것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보기로 한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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