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lideshare.net/cojette/ss-63863660 (Slideshare 발표자료)
본 프리젠테이션은 지난 7월 2일 ‘이상한 모임’의 [모두의 관리]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며칠 전까지 짧게 프리터 생활을 하고 있던 와중 발표 제의를 받아서, ‘관리 주제라니…전 발표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가 이 주제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발표 준비를 하다 보니 만들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는 너무 작아서 7분 40초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이것저것 꾸역꾸역 눌러담다가 잠이 들고 말았어요 보니 내용은 충분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수박 겉핥기 형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더랬다. 게다가 당일날 직접 가서 발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서, 급하게 원테이크 애드립으로 녹음을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려면 하루로도 부족하고 자고로 발표는 애드립이라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발표였다.
마침 이 주제를 보고 재밌어하는 지인들이 자료를 공유해달라는 이야기를 해서, 가뜩이나 발표 자체도 아쉬웠는데 자료만 보면 더욱 더 아쉬울 점이 많아서 자료를 올리는 것과 동시에 말을 좀 더 붙여 보았다.
‘잉여’라는 말이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잉여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도 ‘잉여’라는 단어는 원래의 뜻 외에도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언가’이라는 범주를 포함한 채로 적당히 필요에 따라 변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를 또 내 방식대로 조금 더 변주하여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잉여 - 사회와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
잉여력 - 사회 발전과 생존 유지를 위한 필수 행동 외의, 이른바 ‘딴짓’을 할 수 있는 여력
물론 이 때의 전제 조건이 있다. 남에게 도덕적, 법적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 이 선을 넘는 순간 잉여는 사회악이요 쓰레기요 범죄가 되고, 타인이 나의 잉여 행동을 막는 것에 대항할 수 없다. 이 범주 안에서, 잉여력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잉여’란 자신의 ‘필수 활동’을 하고 남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은 다 한 후의 ‘남는’ 여력으로, 이 ‘잉여분’을 통해서 자신을 이른바 ‘보다 자신답게 만드는’ 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 ‘잉여 활동’은 일이든, 취미든, 공부든, 그냥 쉬는 것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잉여력이 많을 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 한도 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삶은 보다 재밌어지고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러면 그냥 적당히 째고 놀면 되지 왜 이것을 굳이 관리해야 할까. 물론 ‘잉여’ 하면 괜시리 떠오르는 단어인 ‘귀차니즘’이라는 것이 있고, 나도 귀차니즘이 많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간이다. 다만 한 순간만 잉여로울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계속 더욱 더 잉여롭고자 한다면, ‘지속가능한 잉여’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지속가능성은, 적당한 관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잉여활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보니, 이런 잉여에 과한 잉여력을 쏟는다든가, 혹은 과한 필수 활동으로 인해 잉여력이 고갈될 수도 있다. 이렇게 소모되어버린 잉여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래서 현재의 상태를 꾸준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잉여력은 체력, 정신력, 시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는 각각의 구성요소 별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조합의 비중은 보통은 1:1:1이지만, 모든 자기 관리가 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비율이나 값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나에게 맞는 수치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 그만이다.
각 요소별로도 관리하는 형식은 3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원칙, 지표, 도구다. 잉여력의 각 요소별로 이를 유지/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 원칙을 정해놓고, 그 원칙 하에서 이를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 지 지표를 정한다. 그리고 그 지표를 측정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찾는다. 예전에는 이런 것이 어려웠을 지 모르나,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이런 것이 훨씬 더 용이해졌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Quantifying Self의 일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모든 자기 관리가 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비율이나 값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잉여력을 관리한다’는 게 그다지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나의 예를 간단하게 써보겠다. 늘 그렇지만 예시를 보면 아무래도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체력
체력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성인의 신체란 하드웨어와 같아서 더 자라지는 않고 늙기만 한다. 그냥 현상유지만 해도 1/x^3 (x=나이) 의 형태로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 와중에 어디가 아프다든가, 현상유지도 안 된다든가, 내일의 체력을 오늘 끌어쓴다든가 하면 더 심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어쩌다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나의 아까운 잉여시간을 병원에 소비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귀차니스트에다가 운동을 지독하게 싫어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며, 게임 같은 거 잡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폐인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에게 최소한의 체력관리란 필수적이다. 그래서 정한 최소한의 원칙은 두 개다.
- 잠을 늘 적당히 자자.
- 일정량 이상 움직이자.
원칙은 어렵고 복잡하게 정하지 않는다. 일단 이를 지키고 측정하려면 귀찮고, 피곤하며, 어렵다. 그러면 이 원칙에서 지표를 고른다. 1번에서는 수면 시간, 깊이 잔 시간-나는 수면장애가 가끔 있어서 얕게 자서 자나 안 자나 비슷한 경우가 꽤 있다-, 2번에서는 걸은 횟수. 이를 측정하기란 쉬운 것이다. 요즘 healthcare 관련해서 IoT 어쩌고 하는 도구가 워낙에 많다. 심지어 이 것들은 스마트폰으로도 대충 측정할 수는 있다. 내 경우에는 mi-band를 쓰는데, 이건 정말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물론 이 때 기기의 정확성 등을 따질 수도 있지만, 이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건 처음 지표를 만들거나 데이터를 볼 때의 전제조건에 포함되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하루 걸음 기준 치를 ‘(mi-band 기준) 12,000보’ 라고 했다면, 내가 실제로 10,000보를 걸었는데 12,000보라고 기록되었더라도 그러면 기준치를 채운 것이다. 지표를 볼 때에 중요한 것은 추이이므로, 측정 수단 등의 전제조건이 동일하다면 추이를 보는 데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정신력
정신력은 측정하기 매우 까다롭다. 사실 아마추어가 어떻게 함부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신력 자체를 측정한다기보다는, 나의 정신력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서 나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아닌지를 파악하는 정도의 간접적 관리를 한다. 일단 정신력의 원칙으로는 다음과 같다.
- 남의 말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거나 중요한 말이 아니면 귀담아 듣지 않는다.
- 자신의 성향을 보다 많이 파악한다.
1의 경우는 그냥 마음에 담아두고 계속 실행하는 식으로 한다. 사실 1의 경우에는 잉여력을 정말 ‘내 멋대로’활용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신조라고 생각한다. 직접 연관되었거나 중요한 말이 아닌 남이 나에게 하는 말은 보통 그 사람의 관점이지, 나의 관점이 아니고, 별로 내가 ‘잉여롭게’ 사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고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만 할 따름이다(물론 나의 경우다). 2의 경우는,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워낙 여러 면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간간히 돌아보면서 ‘나는 이러면 스트레스가 쌓이는구나’, ‘아 이런 상황은 되게 편하다. 왜 편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런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표를 모을 수 있다. 여기서는 아직 OMTM(One Metric That Matters, 중요한 단일 지표. http://leananalyticsbook.com/one-metric-that-matters/) 은 커녕 KPI를 찾지도 못했다. 다만 내가 하루에 일을 얼마나 했는지(너무 많이 했나), 사람들과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너무 혼자 있어도 우울해진다), 얼마나 집 밖에 있었는지(집에만 너무 있으면 폐인이 된다), 뭘 하고 있는지 정도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이 때 도구로는 Reports 라는 앱을 쓴다. 이 앱은 임의의 시간에 핸드폰 푸시를 보내서 내가 정해놓은 질문에 답을 하게 하여 이를 수집한다. 이 앱에 위의 내용과 같은 질문을 입력해놓고 답변을 하면서 그 데이터를 모은다. 결과는 핸드폰에서도 간단히 볼 수 있고 CSV export가 되므로 그걸 받아서 간단하게 이것저것 돌려서 기간별 결과를 비교한다든가 좀 더 상세한 분석을 해본다든가 할 수도 있다.
시간
시간의 경우는 발표에서 생략했다. [모두의 관리] 관련 발표다 보니 이미 시간 관리 주제 발표가 몇 개 보였기도 하고, 흘러넘치는 자기계발서에 시간 관리에 대해서는 워낙에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무엇보다 내가 시간관리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다. (…) 다만 굳이 원칙이 있다면 이런 거다.
-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일의 시작과 끝은 제 시간에 하자.
- 귀찮은 일은 최대한 줄이자.
1을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해지고 2를 위해서는 귀찮은 일을 얼마나 줄였는지가 중요해진다. 2에 대해서는 따로 측정은 하지 않는다. 워낙 귀차니즘이 심한 인간이라 몰라서 못하지 알면 잘 하게 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 온라인 관련해서는 많이 쓰는 것이 IFTTT고, 돈과 공간과 여력이 되는 한에서는 여러 서비스와 기계를 쓰는 것에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이런 전제조건이 모두 안 될 뿐이다. 언젠가 저런 것들을 쓸 수 있는 선에서는 써보고 싶은 것들이…). 1을 측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터넷만 조금 뒤져도 글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 안 한다(…). 다만 환경이 허한다면 일할 때 뽀모도로 타이머를 돌린다. 물론 뽀모도로 타이머 돌리고 일할 때는 나름 정말 고밀도 집중 상태로 일하므로 1뽀모도로(2시간)만 돌아도 늘어지고, 2뽀모도로 돌면 그 날 에너지를 거의 다 쓴 상태가 되므로 자신을 칭찬해 준다. (…) 뽀모도로 방법이야 워낙 일반적인 방법이고 관련 앱이나 프로그램도 워낙 많아서 정말 필요한 대로 쓰면 된다.
이거 발표했을 때 ‘무슨 잉여가 이러냐’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지만, 민폐 안 끼치고 지속가능한 잉여력을 끌어모으는 것이 이렇게 피곤합니다.. 라기보다, 뭔가 되게 있어보이게 설명했지만 이런 것, 앱을 깔고 설치하고, 간혹 푸시올 때 대답하고, 하루에 한 번 살펴보고 하는 데에는 도합 하루 평균 3분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그것도 주로 핸드폰에서 하는 것이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해도 무리가 없다. 어렵고 귀찮은 것이면 애초에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잉여롭고자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보다 즐겁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은 즐거운지, 즐겁지 않다면 왜 그런지 등을 꾸준히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측정-관리 관점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 쉽고 편하게 꾸준히 모니터링해보자는 것이 결론이다. Quantifying Self 라는 게 별 것 있겠는가. 그냥 자신을 보다 쉽게 지속적으로 바라봄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잘 가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잉여력 관리 역시 어쩌면 지속가능한 잉여가 가능한 지를 살펴보는 것이고, 런 의미에서, 이런 잉여력 관리는 생활 속의 데이터, Quantifying Self의 아주 간단한 예시고, 이를 통해서 지금도 충분히 잉여롭지만 앞으로도 더욱 잉여롭고 싶으며, 이는 일종의 자기애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잉여력이 많을 수록,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삶은 보다 재밌어지고 만족도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