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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슈퍼히어로도 우리 민족이었어

슈퍼히어로 어디서 뭐하나, 저런 사람 안 잡아가고.

이 책을 주변에 놓았을 때, 사람들이 책 제목을 보고 보인 반응은 ‘재밌겠다’ 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 배경의 (대부분 현재) 슈퍼히어로 단편집이야’라고 했을 때는 대부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슈퍼히어로물’이라고 하면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는 있으나 허무맹랑하며 익숙하지 않은 거대한 스케일에 다소 이질적이고 유치한 장르였으나, 최근에는 DC와 마블 코믹스 기반의 영화들로 굉장히 친숙한 장르가 되었다. 다만 친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슈퍼히어로물’ 이라고 하면 여전히 장르 이름(?)도 영어에서 유래한 것처럼, 외국 중심의, 그나마도 현실을 반영한 가상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oo맨’, ‘oo우먼’ 등의 이름이 붙는 히어로와 악당의 싸움이 주를 이루는 일종의 이세계물로 자리잡아 버린 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슈퍼히어로물’이란 ‘슈퍼히어로’, 즉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만 등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실 이 장르는 그다지 우리에게 어색한 장르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미 ‘홍길동’, ‘전우치’같은 비현실적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고전에서부터 등장해 왔다. 모 광고 카피를 응용해 보자면, ‘슈퍼히어로도 우리 민족이었어’. 애초에 외국에서만 존재하던 장르는 아닌 것이다.

‘귀신들 어디서 뭐하나, 저 사람들 안 잡아가고.’ ‘홍길동’, ‘전우치’ 같은 국내 고전에서의 슈퍼히어로는 이 익숙한 고전 문장에서 ‘귀신들’의 자리를 대체한다. 현실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제지만, 개인적, 사회적 역량 탓에 해결하지 못하고 한만 쌓이는 문제들을 속시원히 해결해 주는 존재로, 작품 내에서의 배경이나 문제 역시 이런 한을 보다 직설적으로 해소하고, 독자가 대리만족을 할 수 있게끔 현실을 은유하는 가상의 세계 대신 현실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세계를 가져다놓고 그 안에서 귀신 대신 슈퍼히어로가 뛰논다. 그리고 그 귀신들에게도 뒷이야기가 있듯이 슈퍼히어로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호형호제하지 못하는 등 그 삶에도 애환이 있다. 이 역시도 가상 세계의 히어로들보다 다소 현실적이다. 이 것이 국내 고전에서의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이야기가 그대로 현대로 이어졌다. 그 것이 몇 년 전에 출간된 [이웃집 슈퍼 히어로]였고, 이 책의 적절한 성공(?)에 힘입어 같은 기획의 단편집이 이어서 최근 출간되었으니, 바로 이 책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다.

작가들의 면면도 여전히 화려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내 장르 문학의 유명인(?)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이전 단편집에 참여한 이수현, 듀나, dcdc, 김보영 작가에 장강명, 임태운, 구병모, 곽재식 작가가 참여해서, 이전 단편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이전 단편집에도 참여했던 작가분들의 작품은 전 단편과 유사한 분위기, 혹은 연작의 구성을 보이는, 여전히 흥미로운 단편을 실었고, 새로운 작가분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새로 뽐내는 단편을 실었다. 덕분에 이 단편집은 전작과는 다르면서도 익숙한, 다양한 형태가 적절히 어우러진 흥미로운 구성이 되었다. 이수현님의 글은 여전히 따뜻하고, 듀나님은 여전히 글을 복잡하게 잘 쓰시며, dcdc님의 글은 여전히 신나고 드라마화 되었으면 인기 많을 것 같으며 김보영님의 글은 여전히 차분하고 묵직하다. 거기에 잘 읽히고 다소 웃기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장강명님 글이라든가, 슈퍼히어로물에 기대하는 바를 현실 배경으로 거의 정확하게 짚은 것 같은 임태운님 글, 1인칭 시점의 히어로물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던 구병모님 글, 위에서 언급한 ‘고전 슈퍼히어로물’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곽재식님의 글까지.

이렇게, 외국의 화려하고 낯선 슈퍼히어로와 크게 다를 것도 없지만, 보다 시원하고, 혹은 뼈아픈 주변의, 익숙한 모습이 오버랩되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실려있다. 작가분들의 개성도 충분히 드러나면서, 슈퍼히어로물이 주는 기본적인 쾌감 역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단편집이었다. 전작을 읽은 사람들은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전작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슈퍼히어로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색다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묘한 즐거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슈퍼히어로물에 그다지 취향이 없더라도 친숙한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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