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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회고

새해라고,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하는 건 나에게는 다소 어색한 일이다. 1년이란 게 갑자기 뚝 떨어져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어진 시간에 사람들이 편의상 단위로 나눠두었을 뿐인 단위인데, 새해가 된다고 내가 갑자기 로또가 된다거나 코로나가 하루 아침에 종식된다거나(그랬으면 좋겠다) 타노스가 핑거스냅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많은 경우 ‘시작’에 과도한 의미를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뭔가 시작이란 대단한 것이니 어떤 대단한 시점과 함께하고자 하는 것 같은 것.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너무 시작에 많은 비중을 두고, 그러다보니 이 격언에는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가 필연적으로 달라붙는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 것을 너무 과장할 필요까지 있을까. 보통 그래서 ‘새해에 ~ 하겠다’라는 것은 ‘새해까지 ~하는 것을 미루겠다’와 유사한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유일한 새해 계획은 ‘새해에는 꿈의 집(게임)을 지우겠다’는 것인데(2020년 올해의 땡땡땡 참고), 이 역시 31일까지는 이 게임을 붙잡고 있겠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바로, 혹은 근시일 내에 그냥 하면 된다. 정말 새해라고 뭐가 막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한 살 먹는다’라는 것도 사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일 뿐이고 큰 의미 있을까. 다만 숫자가 무언가 단위를 세주면 다들 매우 크게 인식을 하지만, 시간은 어차피 연속적이다(feat.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자).

그래서 보통 연말에는 새해에 무엇을 하겠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다. 그냥 지금보다 뭘 더 해야겠다…같은 연속성이 있는 것 정도. 그리고 어차피 그런 것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그 때 그 때 필요하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지. 그러다보니 나의 연말은 회고로 가득 찬다. 물론 가열찬 분석과 반성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매 해 그런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건 꽤나 고마운 일이다.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 보는 것이 데이터 분석가의 일 아니겠는가(야). 그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는 단위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냥 있다고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가져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점입가경). 그리고 올해는 예년과는 워낙에 다른 해다 보니 이렇게 돌아보는 것이 조금 더 의미를 가지는 듯 하다.

상반기를 간단하게 살펴본 적이 있고, 하반기도 상반기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 새 코로나는 더욱 심해지고, 사람의 동선은 더욱 줄고,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줄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에 다행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물리적인 제약은 확실히 사람의 변화에도 영향을 준다. 내가 (내 생각보다 더) 다소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어서 더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하반기에 새로 생긴 이벤트라면 리디셀렉트에 아티클 연재를 하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참고). 이제 3화까지 했고 내년에 더 많이 이어질 예정이다. 앞으로도 모두모두 잘 부탁드려요. 처음으로 여자개발자온라인컨퍼런스 에서 무관중 라이브 발표도 해보았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 카메라 울렁증(…).

하지만 다행히 나쁘지 않은 많은 것은 꾸준히 유지되었고, 점진적인 변화는 있었다. 좋은 쪽도 있고 나쁜 쪽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꽤 긍정적인 변화들이 많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남이 보기에는 안 좋지만 그냥 내가 자기 만족이 좀 더 심해진 긍정적인 인간형으로 변화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이사 무슨 상관. 내가 좋으면 좋은 거지(!).

재택근무는 11개월째에 도달했고 이제는 전보다도 회사에 가끔 나가는 주기가 길어졌지만 그래도 다행히 일하는데 큰 지장은 없고, 업무 진행 편차야 당연히 있지만 회사 일은 여전히 그럭저럭 잘 되고 있고, 팀은 소소하게나마 커지고 있다(관심있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컨택을). 사람들의 이력에 도움이 되는 큰 일들을 가능한 한 팀원들에게 주고 서포트하면서 일을 만드는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은 조금 심심하고 쓸쓸하며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성과 측정이 어렵지만, 뭐 하다 보면 늘겠거니. 재미가 없는 듯 있는 듯 하고 일을 만드는 새로운 재미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나의 삶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왕복 2시간의 통근 시간이 줄어들면서 그 시간에 잠을 더 많이 잤고(!), 덕분에 어지럼증과 위장 장애가 대폭 감소했으며 피부가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잠의 효과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재택근무로 인해 상반기에 들인 우리 집 데일리와 위클리(식물 이름들… 물 주는 주기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리’자 돌림.)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가전도구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재택근무 덕에 시작한 + 할 수 있었던 달리기는 이제 안 쉬고 40분을 (천천히) 달린다. 요즘은 추워서 집에 틀어박혔지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그 날부터 다시…! 정말 달리기 못 나가서 아쉽다니 작년의 나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세상에. 다시 매일 출퇴근을 할 수 있는 때가 와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 봐야겠다.

예전처럼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호연마을에도 더 많이 가서 공기 좋은 곳에서 잘 쉬었고, 친구 덕에 좋은 리조트에도 가보았다. 공연들은 싸그리 취소되고 좀 시절이 나아질 만 하면 미친 듯이 예매전쟁에 뛰어들고 우수수수 취소되는 사태가 몇 번이 반복되었지만 그 사이에서도 운이 좋아서 몇 개의 오프라인 공연도 볼 수 있었다. 그런 것이 하나하나 더 귀한 경험으로 남는 시절.

좋은 사람들은 점점 더 만나기 힘들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일은 거의 없다(이런 와중에 새로 입사해주시는 동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SNS는 다소 줄었고(이봐요 웃지 마요), 지인들과의 메신저 대화는 늘었다. 그나마 세상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아서 고마운 일이다. 대부분 집에 있지만 심심할 일은 없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늘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쌓여있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도 최고인 것이다(하지만 꿈의 집은 지울 것이다 정말이다).

올해는 소소한 글쓰기를 하느라 자기계발이나 업무 공부에 다소 소홀한 기분이 좀 있는데, 그래도 팀 스터디를 어떻게든 계속 하고 스터디 준비/복습하는 데 시간을 꽤 투자했으니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절대 개인적인 목적으로 팀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업무 공부야… 내가 공부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필요하거나 땡기는 거 있고 시간 되면 알아서 또 하겠지(자유방임). 그리고 내가 글을 정말 못 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글 쓰는 것에 보낸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시작한 거지만 매주 마감은 정말 괴로웠다. 정말 이걸 한 번도 안 밀리다니 나도 내가 자랑스럽다 진짜.) . 한 번은 이렇게 실컷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머리는 명료해졌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리가 다소 되었다. 허겁지겁 쌓기만 하고 묵혀두기만 하는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풀어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러 생각도 회고처럼 꼬박꼬박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나는 내가 자기애가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것은 내가 몇 가지 기준이 내 눈에 찼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내가 나를 매우 학대하고 있고, 그 기준에 차지 못하는 나를 끔찍하게 싫어함을 알았다. 그런 기준을 버리고, 각각의 사람의 다름을 존중하고, 나도 ‘나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다름은 머리로 이해해서 지금껏 살았지만 나에 대해서는 머리로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나를 싫어하는 것을 메꿀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 것을 깊이 깨달은 올해의 나는, 나 자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나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나름 꽤 괜찮았고, 캐럴라인 냅의 말따마나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 특히 독거노인(…)으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지금도 아주 완전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내가 꽤 잘 맞는다는 것을 예전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내가 전보다 ‘객관적으로는’ 나은 사람인지 아닌 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나란 사람을 더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로,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새해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 것 같다. 미래는 예측불허지만 기대하는 일이 안 일어나면 다른 재밌는 일이 생기겠지. 그리고 나는 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꿈의 집은 지워야지.)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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