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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 후일담

벌써 오늘이면 올해도 반이 지나간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시간은 원래도 빨랐지만 올해는 더욱 특별하게 빠르다.

COVID-19라는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할퀴었고, 그 손놀림에 세상은 이지러졌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라고 뇌까리면서도 크게 와닿지는 않던,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조금씩 바꿔가고, 익숙해져가는 삶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계획도 쓸모가 없지-하지만 크게 어떤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을 감정적으로 다소 어렵게 꾸역꾸역 마무리하고, 그래도 새해에는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감정의 힘은 세서 이성을 가볍게 눌러버린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계속 마음을 다잡고, 괜찮다고,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고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래보았다. 어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새해 역시 녹록치 않았다. 하나둘씩 주변이 사라져갔고, 어쩌면 그다지 크지 않을 지도 않을 상실은 어려운 마음에는 괜히 더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작년 말부터 갑자기 다가온 두려움은 줄지 않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괜찮다’라는 말은 억지스럽고 피상적이었다.

그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졌다. 신기했다. 내가 그동안에 했던, 잘 한 지 모르겠던 선택은 마치 이 때를 대비해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가끔 한다. 맨날 전직을 외쳐왔으나 이 일은 그래도 재택근무에 무리가 없는 일이었고, 불안정한 삶을 작년 하반기부터 정규직으로 정착한 것은 이 경제 불안정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너무나도 적절했고, 회사는 이미 재택근무에 익숙했고, 혼자 살기에 조금은 과하게 넓다고 생각했던 집은 하루 종일 있어도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고, 재택근무를 하기에도 괜찮은 환경이 되었다. 돈이 부족하니 해외여행을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이제는 억지로 참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고, 한동안 도서관이 닫아도 볼 책은 충분했다(그러니까 더 사지는 않아도 될텐데(한숨)).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에 대해 나의 좁은 인간관계를 탓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시간이 쉽지는 않았다. 나란 사람은 적응력이 매우 얄팍해서, 어딘가에 크게 적응한 적이 별로 없고, 그래서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쌓아온 비슷한 루틴의 삶의 힘은 강력했다. 출퇴근하면서 걷는 그 짧은 거리가 체력 유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었고,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피할 수 있었던 수많은 집안일을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오프라인 인간관계 방식에 익숙했고, 나의 타인을 대하는 방식의 어색함은 그 플랫폼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더욱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체력을 기르자고 시작했던 필라테스는 가기 애매해져서 결국 끊어놓은 것의 반을 겨우 가고 추가로 등록하지는 않았다(심지어 회사 근처여서 회사에 잘 안 가다보니 더욱 애매해졌다).가늘게나마 유지하던 오프라인 인간관계란 생각보다도 그 힘이 강력한 것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제는 늦었을 지 몰라도, 그래도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아주 늦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혼자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는 어느 정도 평안해졌지만 그 것이 과연 괜찮은 평안인지 자신이 없고, 조금은 가라앉고 무기력해지고,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내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는가, 아니, 사실은 원래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지나고, 도움을 구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를 조금 더 살펴보면서, 내가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 책과 주워들은 것들로, 나는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고 포장하던 글자와 말은 정말로 포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나를 버려두고 있었고,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과거의 나는 충분히 괜찮았고, 지금의 나도 괜찮고, 앞으로의 나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간 나는 고생했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충분히 해왔고, 그리고 내가 쌓아온 것과 상관없이 나 자체 자체가 존재함으로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나를 욕하고 누군가는 내가 기대보다 못하다고 실망한다고 해도, 그래서 뭐 왜 뭐 어쩌라고, 그것은 내 삶의 괜찮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쨌든 ‘살아가는’ 것이었고,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시간은 역할을 다 한 것이라는 것을, 주변의 다양한 높은 기준과 성과와 목표에 내가 굳이 맞춰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냥 힘을 빼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어떤 분포를 이루는 집단의 원소가 되어서 그 분포에서 어디에 위치하기 위해 기운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해한 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좀 더 가볍게 살아도 되고,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그냥 아, 그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구나, 하고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실 타인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혹여 타인의 눈에 내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비친다고 해도 그거야 내가 만든 내 모습이니 그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이해해가는 중이다.

화분을 기르고 있다. 재택근무하면서 들였다. 내가 화분에 대해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요즘처럼 집에 오래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해서 들였는데 정말로 잘 자란다. 어머니께서는 ‘너가 식물 잘 키우나보다’라고 하시는데 그냥 좀 웃겼다(예전에는 화분들 여럿 죽였다). 그래도 생각보다도 너무 쑥쑥 크고 있는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좀 재밌다.

온갖 생활가전을 샀다. 문명의 이기는 최고고, 기계가 나 대신 집안일 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정말로 내 생활을 유지하는데 보이지 않게 도와준 사람들의 노고를 되새긴다.

그간 길게 끌었던 책 번역이 끝나고 드디어 나왔다. [딥러닝과 바둑]. 재밌는 책이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책도 꽤 잘 나온 것 같아서 기분이 괜찮다.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한동안 번역을 다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도 오는 번역 요청은 아쉽지만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마지막일 번역 결과가 괜찮게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짬짬이 쓴다. 몇 개는 블로그에도 올리지만. 내가 글을 잘 못 쓴다는 거 너무 잘 알겠고, 일필휘지로 쓰는 이 글은 더 엉망일 것이다. 하지만 피드백과 변화가 있는 반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좀 나아진다는 것은, 이제는 충분히 안다. 중간에 아주 작은 거라도 결과를 보이면 그래도 내가 아주 헛발질을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은 들겠지. 내가 글을 잘 썼으면 지금 작가를 했지 이러고 있겠냐(아님).

달리기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못 가게 되기도 했고 집에서 링피트와 요가만 하기에는 다소 심심하기도 했다. 다른 건 버려둬도 체력은 중요하고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 마침 근처 공원에 트랙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작정 런데이앱을 깔고 5분 달리고 2분 쉬고 달려보았다가 무릎이 아파와서 그만두고 2주가량 쉬었다. 그러다 정말 초보 프로그램을 켜보니 1분 달리고 2분 쉬고를 반복하더라. 이게 무슨 재활치료인가 하는 기분이었지만 따라해 보았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아, 내 폐와 심장 정말 엉망이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30분 따라하고 나니 기분이 꽤 괜찮았다. 간만에 쐬는 바깥공기도 괜찮고. 그렇게 1주일에 1~3회씩 공원에 나가고, 이제는 5분 달리고 2분 걷는 걸 30분간 무사히 성공했고, 7분-2분 사이클에 곧 도전할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하는 회사지만 그래도 집에서 나름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늘 즐거운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회사 일이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그래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좀 더 낫고, 두 달 전과 비교하면 좀 더 많이 낫고, 1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낫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작년 말에, ‘ 사람들과, 내가 생각하는 형을 만들어가고 싶고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라고 써놨는데,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게 해나가는 것 같다. 주변 분들이 잘 도와주고 계셔서 매우 감사하다. 해야 할 게 잔뜩 있다. 하나씩 해치우면 되겠지. 회사 들어온 지도 오늘로 정확히 1년이다. 늘 그렇지만, 이런 사회에서도 내가 여기서 1년을 있었던 것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에서도 헛발질만 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동료분들 덕이겠지. 어디서든 마찬가지였지만.

작년 말의 이야기를 다시 본다. 벌써 가물거리는 작년 말의 마음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헤아린다. 끝없는 두려움, 강해져야겠다는 생각, 억지로 기운내려고 애쓰는 마음. 참 힘들었고 고생했구나 싶다. 하지만 그래서, 그 덕분에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괜찮은 것일게다. 이번 달보다 다음 달이 나을 것이라는, 어거지로 다잡은 예측은 아마도 그 때의 나 덕분에 성공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제는 ‘시원해졌다’. 내가 꽤 좋아하던 칸노 요코의 칼럼 제목을, 이제는 그간 쓰던 의미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도 연말에는 한 해의 후일담, 하반기의 후일담을 쓰면서 이 글을 보겠지. 지금의 나보다 연말의 나는 조금 더 나을 것이고, 낫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힘을 빼고, 나를 좀 더 인정하고, 그냥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그거면 되는 것 같고, 그리고 그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 상황은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빨리 맘 편히 놀러가고 싶다(흑흑).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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