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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후일담

11월 초의 어느 날 새벽. 낯선 천장이다.

갑자기 언니와 형부가 괜찮냐고 묻는다. 대충 보아하니 병원 응급실이다. 의사와 간호사도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모든 게 잘 생각나지 않고 그냥 너무 춥고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핸드폰의 비상연락으로 언니에게 전화가 간 것 같았다. 넘어지고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음날 와서 검사 결과를 들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 3시 반쯤 정신없이 집에 돌아와서 기절하듯이 잠들고 다음 날 눈을 떴…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지러운 상태로 어떻게 욕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의 반 이상이 듀오덤으로 덮여있고 그 사이로 너무 많이 새서 넘쳐 흐른 진물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눈꺼풀도 듀오덤과 진물이 엉겨붙어서 뜨기 어려운 거였다.) 그 와중에 온 얼굴이 완전히 부어있어서 정말 배트맨의 투페이스가 이런 건가(…) 생각했다.
병원의 상세 내역서와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머리에 혹이 많이 나고(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짚어보니 여기저기 머리도 부어있었다) 얼굴 찰과상도 심해서 뇌와 경추 관련해서 이런저런 검사와 촬영을 한 듯 하다. 그리고 다행히 검사 결과는 큰 이상은 없고 별 다른 골절상도 없고, 다만 출혈이 늦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상하면 바로 응급실이라도 오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얼굴의 붓기도 가라앉았다. 얼굴의 찰과상은 다 낫는 데는 몇 달이 걸릴 것이고 일부 흉터가 남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기분 탓일 수 있으나) 크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점점 작아지고 있고 아프거나 사는 데 크게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닌 듯 하다. 며칠 후에 이석증이 심하게 오긴 했지만 바로 고쳤다. 며칠 후 무릎이 점점 붓더니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해서 갔더니 염증이 애매하게(…) 찼다고 따로 치료를 할 건 아니라고 해서 찜질하면서 한 달 반 가량을 최소한으로 걸으면서 쉬었더니 지금은 가라앉았다. 덕분에 한 달 남짓을 말 그대로 일부 필요한 일을 제외하면 거의 은둔생활에 가깝게(집에서도 커튼 다 치고 햇빛 안 닿게 하고 있느라 말 그대로 은둔에 가까웠다…) 쉬었다.

올해의 나의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일종의 지긋지긋함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8개월 가량을 지지부진하게 일하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은 업계와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알아보자고 의미도 부여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은 작년보다 더욱 안 좋아지기만 했다. 세상은 정신없이 왔다갔다하고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으로 비합리적일 수 있고 이 것이 변화인지 나를 해하는 일인지를 끝없이 생각해야 했고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을 매일마다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더 걷고 뛰고 놀러다녔지만 근본적인 것은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주변의 좋은 분들 덕분에 중간에 그냥 엎을 기회도 없지는 않았으나 산뜻하게 엎을 수 있는 상황들은 아니어서 결국 그러지 못했고 그러다 더 이상 바닥을 칠 수 없어졌을 때 마무리해야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긋지긋했다.

그 보상처럼, 두어달을 산뜻하게 쉬었다. 새로운 곳에 가고, 신기한 것들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마치 앞으로는 좀 괜찮을 것 마냥 시간을 보냈다. 추석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성공하지 못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 느긋하게 쉰 다음에는 자신이 아는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돌아온 세계는 내가 알던 세계가 늘 그렇듯 여전히 다른 색으로 지긋지긋했다. 물론 싫은 곳을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것은 유일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 하는지, 이 능력을 어떤 환경에 맞출 때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근 1년 넘게 했던 일이 너무 싫어서, 이제 아무 일이나 덥썩 잡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막 여유부리고 쉴 만환 재력이 따라주는 것도 아닌데?

이 와중에 집 전세는 재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살 곳을 알아보다보니 고민은 두 배가 되었다. 서울 집값은 왜 이렇게 그 새 비싸졌는지, 이 많은 집 중에 나 하나 갈 곳은 없는지. 이 기회에 서울을 뜨고 시골로 가자! 같은 마음도 선명하게 들었지만 그러기엔 내 단기간의 미래마저 정해지지 않았는데. 난 뭘 하고 살아야 하지 같은 생각을 여러 곳을 알아보면서 여러 모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왜 이렇게까지 사는 게 피곤한가 하는 생각만 들었고 하루하루가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왜 사는 게 이렇게 어렵지? 분명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잠은 충분히 자는 것 같지만 매일이 피곤하고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11월이 되었고, 사고가 났다. 일이 안 되려니 이런 돌발성 악재까지 겹친다고? 싶지만 당시에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모든 고민과 지긋지긋한 마음 자체가 사라졌다. 일단은 내가 멀쩡해지고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드레싱을 가느라 거울을 볼 때마다 끔찍해서 사실 다른 생각을 할 기력도 사라져 버렸으니까 뭐.(…)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누워있는데,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원래 본인이 들어와서 살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연장 계약을 하자고 했다. 갑자기? 싶었지만 빠르게 날짜를 잡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서 계약서 갱신을 했다. 이렇게 한 가지 큰 고민은 꽤 뒤로 미뤄졌다.

또 다른 고민도, 일단은 내년으로 미뤄둔 상태다. 물론 지금은 앞서 말한 것처럼 꽤 멀쩡하고, 사람들도 잘 만나고 다니고, 이제는 종종 산책도 하지만, 어차피 모든 일이 내가 해야지 한다고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흐름에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고, 그 것은 대개 연말은 아니다. 골절 등의 심각한 문제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자잘한 내상은 꽤 있었는지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도 체력이 확 떨어진 것이 느껴졌어서, 조금씩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몇 주 전에는 1-2km만 걸어도 쉬어야 했지만, 지금은 3-4km까지는 안 쉬고 걸어도 괜찮은 것 같다. 이런 식이다. 올해 잠시나마 꿈꾸던 10km 1시간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좀 더 미뤄지겠지만, 아마도 곧 괜찮아질 것이다. 모든 일은 나아질 수 있다. 기회만 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종종 보존식품에 대해서 생각한다. 밖에서 많은 것들이 아름다운 접시 위에 올라갈 때, 어두운 항아리 안에서, 높은 염도로 피부가 상하고, 세포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받고, 무력하게 숨이 죽는 음식들을 떠올린다. 접시 위에 아름다운 모양새로 올라가지 못하고, 색은 짙어지고 주름이 지기도 하여 볼품없어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나의 이런 질리고, 가면 갈 수록 힘들었던 이런 시간도, 일종의 보존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신선하고 반짝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쉬이 상하지 않고 단단한, 그러면서 더욱 농후한 맛을 내는 그런 것.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하고, 닿지 않는 것에 닿아보고,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것도 버텨보고, 이 상태로 어떻게 살지 싶은 상태를 이겨내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나의 장점마저 잃지는 않는 것. 매일매일 ‘야 진짜 어떻게 여기서 또 이러냐’ , ‘대체 나한테 왜들 이러는거냐’ 같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지만 그 때마다 ‘어쩌겠어요 이겨내야지.’ 라고 내뱉으며 그 시간을 버티는 것. 이런 것을 하루하루 쌓아서 일 년을 만들었다.

올해는 이렇게 어찌 보면 꽤 괜찮은 숙성의 시간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지나고 보면 당시보다 별 것 아니었고 장점도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일단 이제는 더 이상 웬만한 염도에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바닥이 없고 더 심한 일도 있겠지만 뭐 그렇다고 해도 어쩌겠어요 이겨내야지. 그리고 새해에는 항아리를 열고 맛을 보기를 기대한다. 아마도 꽤 괜찮은 감칠맛이 날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단단하게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썩지 않고 오래오래.


그러니까…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