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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회고

남양주에서

최근에는 거의 화장을 하지 않는다. 햇빛 알러지가 있어서 썬크림은 어쩔 수 없이 바르는 편이지만, 그 외에는 내킬 때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몇 년을 해도 그닥 잘 하지 못했던 화장이라 딱히 외모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도 않다(야). 머리 염색도 해야지 해놓고는 귀찮다고 계속 배를 째고 있는 통에 흰 머리가 한 가득이라 본가 갈 때마다 어머니께 한 소리 듣고 있다. 올해를 시작할 때의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했고, 회사에 가거나 밖에 오래 나갈 때는 간단하게라도 화장을 했다. 초여름에 자른 머리도 아직 별로 길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이유지만 꽤나 다른 느낌이다.

이런 것보다도 아마 더 많은 것이 1년 남짓한 시간에 달라졌으리라.

사람이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다지’라는 말의 범위는 사용하기 나름이다.

작년의 회고와 올해 하고 싶다고 적어둔 것들을 살펴보았다. 작년의 나는 다소 지쳐있었다. 무언가를 계속 아둥바둥 해왔지만, 하나같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모래알을 쥔 것 마냥 손 틈새로 빠져나가기만 했던.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었고, 무언가 재밌고, 좀 더 안정적인 한 해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지친 기운이 그대로 이어져와서 그냥 배를 째고 드러누워 버린 것 같은 시간들.

딱히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하고 싶었던 것들은 꽤 했다. 좀 게으르게 쉬운 것만 찾아다니기는 했지만 요가도 꾸준히 했고, 소소하지만 책 번역도 한 권 했고, 영어회화도 꾸준히 하고 있다. 다들 뭔가 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현상 유지는 되는,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수 있는 그런 것들. 사실 이 것만 해도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올해는 이렇게 꾸준히 무언가를 계속 해나가기에 좋으면서도 좋지 않은 해였다. 그러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해놓고도 다른 곳도 구하지 않은 채 회사를 그만 두었고, 그 전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필귀정. Everything is eventual.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해야 했고 왜 내 주변은 나를 그렇게 내몰아야 했나…라고 생각해보지만, 이제는 다들 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고, 나의 퇴사 역시도 어차피 일어날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지난 일이다.

그 이후로 벌써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쉬기 시작한 직후에는 나 자신도 매우 불안정했고 날은 끔찍하게 더웠고 체력은 바닥이었다. 어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어떤 생각도 없었고, 하려던 일들은 뭔가 자꾸 틀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안 하던 연애도 하기 시작하면서 다면적으로 불안정한 시간이 흘러갔다. 우선은 그냥 편안하게 쉬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은 많았지만 돈과 안정성은 적어졌고 끝없이 다음 길에 대해 고민은 되었지만 하고 싶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만사가 다 싫었으며 즐거운 것도 없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열심히 자신을 추스려보았지만 원체도 성격이 다소 급하고 예민한 나란 인간이 이렇게 불안정할 때는 추스려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나마 버티자-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치얼스. 아주 조금씩 무언가를 해볼까 하고 꿈틀거려 봤지만 계속 합이 안 맞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나는 더욱 의기소침해지기만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나니 영원할 것 같던 끔찍한 더위도 살짝 누그러들고, 어색하던 삶도 보다 편안한 삶으로 바뀌어가고, 천천히 사람들도 만나고 다니고, 평소에 못했던 것들도 조금씩 해보고, 마음도 차분해지고, 이렇게 지내는 것도 조금 괜찮고, 길게 짧게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 하기 조금 어려운 일들을 해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재밌어 하는 일을 조금 큰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래, 어떻게든 버티고 (단기간은) 소소하게 먹고 살 걱정까지는 안 하게 되니 사람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전에 프리랜서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일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본다. 물론 사회에서 규정지어놓은 대다수의 형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독거노인에게는, 굉장히 피곤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잠깐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도 나란 사람의 삶에서 나쁘지는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가장 크게 하고 싶던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하고, 얄팍하게나마 답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가끔 했지만,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일단은 가고 있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갈 지도, 아니면 또 다른 길로 갈 지도 모르지. 하지만, 역시 목적지가 뿌옇기만 하다면 어디로 가도 그게 길이기만 하면 상관없잖아? 그래서 이제, 다시 언제 흔들릴 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라앉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때에, 올해 하지 못한 생각을 조금 더 해 볼 생각이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가더라도, 평소의 그 모습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지루하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괜찮다, 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스티븐 킹님의 모 소설의 후기 중 일부를 떠올린다.

상황은 좋아질 수 있다. 많은 경우 생각보다 현실이 나았고, 그래서 좀만 참고 기다리면 꽤 많은 경우 그렇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마도 조금은 그렇지 않았나-

새해에는 머리를 좀 다듬고 염색을 해야겠다. 머리도 몇 달 후면 아마 전과 같은 단발머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모습으로 지금과 또 달라져 있을 지 조금 기대하고 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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