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스타워즈가 방영했다. 조카는 바로 ‘막내 이모- ‘를 외치면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면서, 나는 ‘이렇게 알려줄 윗 세대 덕후가 없었어서 매우 힘들었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때 어느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을 해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물론 가르쳐주려고 노력은 한다. 조카들은 나처럼 삽질하다 잡덕에서 머물지 말고 보다 쉽게 덕후가 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나도 지금이라도 스승이 필요하다!’ 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님은 파다완을 들여야지 스승을 찾습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필요하다. 지금도 배움의 길은 늦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은 이것저것 혼자 마구잡이로 파다보니 뭐 하나 제대로 파는 것 없이 모든 데 다 상식선으로 발을 걸쳐놓을 뿐인 이도저도 아닌 영원히 고통받는 잡덕이 되었다.
어디 덕력 뿐이랴.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매사에 어리버리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물론 삽질이 먹힐 때도 있지만 대부분 돌덩이에 걸려서 삽만 부러지기 일쑤다. 회사 생활에서도 어쩌다 신입때부터 혼자 제품 하나를 맡아야 했고, 빅데이터란 말이 나오기 뱅만년 전에 데이터 분석을 한답시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는 데에서 땅을 파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늘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일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라고만 뇌까렸다. 남들은 어려운 일 생기면 상담할 멘토도 있던데 나는 붙임성이 좋은 성격도 못 되고 말을 조리있게 잘 하지도 못해서 그냥 혼자 끙끙대면서 꾸역꾸역 온 게 지금이다.
Alice: Which way should I go?
Cat: That depends on where you are going.
Alice: I don’t know.
Cat: Then it doesn’t matter which way you go.
– Lewis Carroll, [Alice in Wonderland]
학교란 얼마나 좋은 곳인가. ‘가르쳐주세요, 안 가르쳐주면 당신 책임이고 내 책임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이라고 일단 떠맡길 수 있는 선생님이란 존재가 잔뜩 있다. 물론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면 어찌할 수 없는 헬게이트로 떨어지고 그런 비율이 적지 않다는 것이 세상의 비극이지만. 일단 구조 자체로는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난 아주 다행히도(헬게이트일 뻔한 데에서는 빠져나왔고) 인생의 멘토까지는 모르겠더라도 학교 있을 때는 일단 나쁘지 않았던 교수님들을 만나서 무사히 졸업했다. 그들에게 졸업 때 외에 기대지 못하고 그 이후에는 연락을 거의 하지 못한 것은 역시나 나의 친화력 0에 가까운 성격 탓-즉 나의 책임일 뿐이다.
물론, 나의 학교 생활을 그나마 무사히 마무리짓게 해준 그 분들께는 늘 어느 정도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고, 간간히 그 분들께 메일을 쓰면서 다시금 그 때를 되새긴다. (하지만 점점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인사를 하면 다들 감사히 받아주실 분인 걸 알지만 그냥 내가 보잘 것 없고 부끄러워서- 마음만 되새기면서 표현하지는 못 하고 있다. 나란 사람이 늘 그렇다) 하지만 그 분들이 이제와서 나를 도와주기 힘들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기대고 부탁할 정도로까지 그 분들을 따르고 싶거나 하는 생각도 없다. 이제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고, 사실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은 분들도 분명 계셨다.
하지만 사회란 곳은 그마저도 없는 황량한 곳이다. 학교만큼 아름다운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어디에도 명확하게 ‘여기 스승들 있음’이라고 지정해 놓지도 않는다. 삶에서 어쨌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윗 사람들이 일의 스승이 아닌 경우도 많고, 삶의 스승은 더더욱 아닐 경우가 많다. 물론 스승(요새 유행하는 용어로는 멘토)으로 삼고 싶을 만큼 좋은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낯가림과 호기심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아가들마냥 뻘쭘하게 가서 슬금슬금 툭툭 건드려 보기라도 하겠지만, 아쉽게도 10여년 간의 사회 생활 동안 나의 어마무지한 낯가림과 걱정, 자신없음과 팽배해져 가는 업의 다양성, 빠른 삶의 속도는 모든 이와의 순간의 연으로밖에 남지 못한다.
물론 주변에 훌륭하신 분들은 꽤 있고, ‘우와 나도 저 분처럼 되고 싶어’라든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나도 저 분한테 뭔가 배우고 싶다’, ‘나도 저 분 밑에서/같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분들은 인구통계학정보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있다. 게다가 요즘의 인터넷 세상이란 너무나도 좋아서, 이런 (일명 존잘님) 분들과 SNS 등으로 괜시리 친한 척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들은 다들 자신의 세상이 있을 것이고, 나같은 쪼렙들이 이미 여럿 귀찮게 하고 있을 것이며, 그런 걸 이기고 친해질 만큼 내가 매력있는 인물이 아니며, 역시나 그럴 정도로 그렇게 살가운 인간 자체가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는 데에 이래저래 치이고, 앞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서 뭐가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겠냐먄, 최소한 이정표는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가는 길이 낭떠러지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더욱 스승이 필요하다. 난 아직 미약하고, 뭘 더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매사에 어리숙한데 이걸 해보는 게 어떨까, 그건 이렇게 해야 한다, 앞서서 가르쳐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물어볼 수 있는, 마스터 요다가 필요하다. 삽질에 능한 만큼, 그들이 ‘제다이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해’ 라고 툭 던지고 가면 열심히 따라줄 자신은 있는데, 사람들이 ‘저한테 어케 하라고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니가 파다완을 키워야지 무슨..’이라고 하는데 난 그저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나마 어리버리하게 살아온 것도, 아직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지 않고 어떤 길이든 걸어가고 있다는 것은, 삽으로 땅을 팔 때마다 같이 파는 사람들, 나보다 먼저 돌덩이를 발견한 사람들, 여기 파면 뭐가 나온다고 지도를 던져준 사람들, 삽자루가 부러졌을 때 새 삽을 가져다준 사람들, 혹은 아주 가끔이나마 보면서 쟤가 어디로 가고 있구나…하고 위치라도 확인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지속된 것임을 안다. 그 사람들 역시 모두 나의 스승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오늘 ‘스승의 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이렇게라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주 잠깐이라도 옆에서 계속 광선검은 커녕 낡은 삽으로 여기저기 땅을 파고 있을 한 아해를 쳐다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앞으로는 항상 그럴 것 같지만(…)) 마스터 요다가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저에게로 오십시오. 이상! (틀려)
(3년 째 글을 옮기면서 조금 수정을 했다. 여전히 같은 마음인 것 보면 나는 작년보다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