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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에 대한 소고

몇 시간 후면 거의 8년 전이 될 것 같은 한겨울, 내 생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칠을 내내 울며 지내다 생일이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인에게 들은 적이 있는 절에 무작정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고 버스에 올랐다. 정신이 없어서 버스에서도 대충 내렸더니 정류장도 잘못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정신은 없었고,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내내 울며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한참을 걸었던가, 작은 절이 보였다.

그다지 잘 알려진 절도 아니었고(나도 소개받기 전에는 몰랐다) 추운 주말이라 방문객도 나 혼자였다. 동안거(스님들의 겨울 수련 기간) 기간이라 절에 스님들도 별로 계시지 않았고,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 스님이 담당자였다. 춥고, 내내 울어서 머리도 아픈 상태고, 일정은 널럴한데다 혼자였고, 저녁 공양시간까지 그냥 자유시간으로 있으라고 해서 멍하니 방에 있다가 절 구경이나 할 겸 밖에 나왔다.

작고 조용한 절은 볼 것도 없고 걸어서 돌아도 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지만, 오히려 작고 조용해서 마음이 편했고, 오는 길에는 그저 서럽기만 하던 찬 바람도 오히려 머리를 식혀주는 것 같았다.

저녁 공양시간이 되었다. 며칠간 밥을 삼키지 못했고 저녁 역시 한 두 숟갈 떴을까, 아마도 며칠 만에 액체가 아닌 것을 처음 먹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거의 먹지 못해서 옆에 있던 보살님이 그렇게 못 먹어서 어떡하냐고 걱정어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예불을 드리고, 참선을 했다. 불경의 복잡한 한자들의 의미를 스님에게 여쭈었더니, 간단히 말씀해 주셨다. ‘Respect.’ 참, 간단하구나…하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것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내내 울기는 했지만, 그 때 쯤에는 내가 왜 울고 있는 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10시. 평소라면 잘 생각도 안 하고 그나마도 늘 잠드는 데 1-2시간 넘게 걸렸는데 그 날은 피곤해서인지 잠도 일찍 들었고, 새벽에도 제 때 깼다(불면증으로 시달릴 때는 보통 새벽에 깨기는 한다. 하지만 템플스테이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다 보니…). 보통은 일어나서 우울한 생각에 시달렸지만, 그럴 새도 없었다. 얼굴에 대충 물만 묻히고 새벽 예불을 드렸다. 새벽공기를 쐬고, 다시 참선을 할 때는 집중이 꽤 잘 되었던 것 같다. 천천히 걸었다. 공기는 맑고 차가웠고, 하늘은 겨울 하늘 특유의 옅은 파란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햇살이 밝았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돌아와서는 스님이 주는 차를 마셨다. 이것저것 질문을 했던 것 같고,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알 수 없이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스님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고, 나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울음이 차츰 잦아들었다.

짐을 챙기고, 점심을 먹었다. 밥 한 그릇을 가득 담아서 천천히, 맛있게 다 비우고, 점심을 잘 먹는다고 기뻐하던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스님께도 인사를 드리려고 했지만 출타하고 계시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잠이 들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는,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사람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했지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웅덩이에서 발을 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4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고,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나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사실 그것이면 되었다.

이 것이 나의 첫 템플스테이였다. 오래 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후, 이 때의 어찌 보면 드라마틱했던 심경의 변화를 기억하고, 나는 거의 매년, 두 세 번씩, 가끔 머리가 아프거나 사는 게 피곤할 때 종종 길게 혹은 짧게 절에 다녀오고는 했다. 여러 절을 다녀보고 싶어서 이 곳은 다시 가지 않았다. 여러 절을 경험했고, 여러 생각을 했고, 힐링 같은 것은 모르겠으나 최소한 하루 정도만 있어도 기분이 꽤 좋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평안해졌고, 절이 주는 힘도 조금은 약해졌다.

그리고 재작년, 크리스마스때, 업무에서 무시를 당하고 스트레스를 받던데다 괜히 시끌벅적한 것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만에 다시 이 절을 찾았다. 마침(역시) 동안거여서 3박 4일 집중참선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가했다. 정말 하루 종일 참선만 했고(…) 허리가 아팠고(…) 조용하고 좋은 시간이긴 했으나 어떤 감흥도 들지 않았다. 그 때 계시던 스님은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얼핏 들었고, 그 때 신경써주시던 보살님도 계시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하루 이틀 쉬고 온다고 세상의 일들이 달라져 있지는 않았고, 내가 변한다고 해결될 일도 없었으며 나는 그대로였다. 늘 그렇듯이. 그리고 이 이후로 템플스테이를 가지 않았다. 이제는 그다지 크게 필요없지 않나, 나는 이제 이런 것으로 달라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그냥 절에는 구경하러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이다. 별 다를 것 없는 연말이다. 최근 내 삶의 너절함이 파고들어오면서, 그 8년전 즈음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오래 전 일이다. 그리고, 역시나 연말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다시 돌아왔다, 이 곳에.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어쩌면 이 작은 건물이, 나즈막한 언덕이,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막연한 희망을 안고.

다 알고 있다고, 괜찮다고, 기다렸다고.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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