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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독서량에 대해 좀 더 뿌듯해 하는 법

매주 1:1 영어회화를 하는데, 어느 날인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매달 읽은 책을 정리하는데, 어떤 달에는 4-5권 읽은 때도 있지만 어떤 달은 1-2권 읽은 때도 있다. 지난 달에도 딱 두 권 읽긴 했지만 어쨌든 썼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다.

“저는 분기마다 정리를 한다. 옛날에는 책을 읽을 때마다 정리를 했는데, 그 때는 대충 1년에 150권 정도를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달 정리를 했던 때도 있는데 그 때는 1년에 100권 정도를 읽었다. 요즘에는 읽는 책의 수가 워낙에 들쭉날쭉하기도 하고, 솔직히 예전만큼 책을 읽지도 않는다. 책 읽는 수가 들쭉날쭉하면 좀 더 기간을 늘리면 그 들쭉날쭉한 게 줄어든다. 그리고 기간을 늘리면 일단 절대적인 책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책을 적게 읽는다는 죄책감이 조금 줄어들며, 그 죄책감을 느낄 빈도도 줄어들어요. “

선생님은 매우 좋아하셨다.

“아, 굉장히 훌륭한 팁이네요! 심지어 통계와 수 전문가가 해 준 이야기니, 남들에게도 전문가에게서 얻은 조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

…데이터 분석가 라는 직업명을 달고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같은 숫자라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집계되는 기간과, 그리고 그 숫자의 상대적인 양과 절대적인 양, 그리고 해당 주제에 대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따라서 그 숫자는 굉장히 달리 표현될 수 있다. 집계 기준은 보통 기간으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얇은 책과 두꺼운 책을 똑같이 한 권으로 쳐도 될까? 혹은 만화책과 순수 글자만 있는 책을 똑같은 기준으로 쳐도 되는가? 그러면 삽화집은 어떤가? 하는 것들도 있다. 내가 재미로 읽는 소설책과, 공부를 위해서 읽는 교과서를 같은 기준으로 세도 될까?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집계 기준에는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고, 그 기준은 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반영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만화책은 공개적으로 쓰는 수치에는 넣지 않는다(워낙 만화책을 많이 읽기도 하고, 소싯적 만화방에서 만화책 속독에 단련되기도 했다(먼 산)). 공부용 책도 넣지 않는 편이다(그런 건 어차피 천천히 읽고 많이 읽지도 않는다). 어차피 내가 무슨 공인도 아니고 내가 책을 얼마나 읽는 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매년마다 비교는 하는 편이니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명시하고 꾸준히 가져가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본인의 행동을 기억해 내기에도 용이하다. 내가 왜 이 때는 책을 적게 읽었지? 같은 것을 생각할 때 ‘아 이 때는 돈 키호테(2권, 총 1,670페이지)를 읽었구나!’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기도 하다.

같은 숫자라고 하더라도 “많다”, “적다”, “충분하다”, “부족하다”같은 서술적인 표현은 표현 주체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숫자와 표현된 글을 보고, 그 것을 재해석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여버리기도 한다. 그 표현을 쓴 것이 본인인 경우에도 그렇기도 하다. 그렇게 숫자에 대한 표현은, 혹은 숫자를 어떻게 집계하느냐에 따라, 본인도, 타인도, 생각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요즘에 한국에서는 ‘팩트’라는 말을 되게 좋아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숫자가 들어가면 ‘팩트’라고 하면서, 그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해요. 하지만 숫자란 굉장히 상대적이고, 특히 데이터의 경우에는 그걸 어떻게 수집하고, 집계했는지에 따라서 크나큰 차이가 있지요. 그리고 그 숫자의 모양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요. 하지만 숫자라면 일단 믿고, 그게 진리인 양 생각한다.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봐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숫자에 대한 책임은 그 숫자를 ‘만든’, 내 몫이다. 나의 지표를 만드는 데에는 크게 상관없지만, 많은 사람의 가치판단에 기여했을 때에는 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은, 할 수록, 부담스럽다.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업에서 가장 큰 숙제이자 모든 통계치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참 애석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 달 말에 나는 나의 독서량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Note: 모든 실화는 약간의 각색을 거칩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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