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영화 본 게 급속도로 줄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썼던데 올해는 훨씬 더 줄었다. 거대한 마감이 올해의 나를 짓누르고 있었으며 덕분에 ‘간만에 뭐 좀 볼까’ 하다가 ‘내 팔자에 무슨…‘하고 취소한 영화표가 뱅만개며 넷플릭스에 찜만 해둔 것이 또 뱅만개다. 하지만 어쩌다 극장을 봐도 의도든 아니든 봤던 것만 또 보고 집에서는 원래도 영상을 잘 안 보는 편인데 마음에 부담이 있는 상태로는 더더욱 영상을 잘 보지 못할 뿐이고 마감이 사라진 후에는 나라가 날 도와주지 않고 그렇게 나의 영상 감상은 망했다네. 얼마나 영화를 안 봤는지 본 영화 수랑 본 공연 수(공연도 적게 본 거 같은데)가 같아 세상에.
기간: 2023-12-26~2024-12-27
영화: 20개
그 외: 적당히.
이렇게 본 게 없는데 뭘 꼽는 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후보도 없어서 간단하게만 골라보면
올해의 SF 영화: 애프터양 – 완벽하지는 않지만 분명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올해의 음향효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올해의 장면: ‘파묘’의 대살굿 장면.
올해의 포스터: 에일리언 로물루스 – 정말 저 포스터 처음 보는데 내적 비명 지름. 야 이거지…!
올해의 영화 음악 : 류이치 사카모토 Opus 앨범 – 그게 영화 음악이냐면 넘어가도록 하자
올해의 시리즈: 리플리 : 더 시리즈 – 넷플릭스여 제목 답게 시리즈 만들어야지…? 시즌 2 내놔요 맡겨놨다구
올해의 예능: 흑백요리사 – 말해 모해.
올해의 애니메이션 : 던전밥
영화 후기
- 모노노케 극장판:우중망령 – 여전히 화려한 그림과 일본 전통을 적절히 녹여넣은 이야기. 다만 기억속 모노노케 시리즈보다 좀 더 이야기는 순화된 맛이 있고 색감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인물 작화가 좀 심심해진 것 같은데 역시 기분 탓인가. 그래도 좋았다 요즘에 만나기 힘든 귀한 미술… 하지만 3부작이란 건 미리 알려주면 좋잖아.
- 전,란 -통역사의 사명이 가장 빛났던 영화. 액션신도 좋았고 미술도 좋고 배우들도 딱히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니며 특히 왕은 정말 캐해를 너무 잘해서 때려주고 싶었는데(…) 이야기를 너무 급하게 풀다보니 뭔가 징검다리마냥 건너뛰는 통에 이야기 설득력이 영 부족한 기분.
- 크레센도 – 반 클라이번 대회 홍보 다큐를 굳이 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콩쿠르에 대해 간접 경험도 하고 연주자들 각자의 다른 생각들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하지만 역시 백미는 임윤찬의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지. 하아아.
- 퍼펙트 데이즈 – 일본 공공 화장실 홍보영상인가 싶은 마음이 안 든 것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자본 등의 배경 여유가 있는 사람의 소시민인 척 하는 삶 같은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항상 담아두는 말인 ‘나는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문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영화여서 아름다웠다.
- 에일리언:로물루스 – 대부분의 에일리언 시리즈를 좋게 받아들이는 편이라 이번 영화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고 포스터만 보고도 감이 왔다 붉은 배경에 페이스허거…이건 실패할 수 없다… 그리고 역시. 아아 이 에일리언 1, 2에 대한 경의를 가득 담으면서 요즘 세대를 완벽히 녹여넣은 호러 팬무비…아름다웠다…
- 가여운 것들 – 꽤 기대하던 작품이고 영상미나 연기는 좋았는데 이야기가 이게 맞아…? 저 가능성 많은 여성 캐릭터를 이렇게 소비해 버린다니 너무 얄팍하다.
- 크로스 – 주연 배우들 모두 선호하는 편인데 와 황정민 국제시장 이후로 이렇게 성의없이 연기하는 거 처음인데 아니 그럴 법도… 염정아가 아깝다…
- 레스파티 –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관람. 재밌는 호러일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너무 많은 분야를 건드리다가 모두 되다 만 것 같은 이야기여서 나중에는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배경 자체는 흥미로웠다.
- 섀도우 오브 파이어 – 츠카모토 신야 라는 사람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부천국제영화제 다들 매진인 사이에 겨우 자리가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일본의 전쟁 후 고통 어쩌고 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일단 곱게 보기 어려운데다 몇몇 불쾌한 장면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것이다.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 음악이 삶이 되고 삶이 음악이 되는 장소와 사람들. 이 그룹의 음악을 위시한 쿠바 음악을 좋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 다큐에서부터 부쩍 좋아졌다. (이제서야)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귀만 틀어막고 생각을 조금만 막으면 온 세상이 꽃밭인 사람들에 대해서. 그래도 그 꽃밭 한 켠에는 또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선이 숨어있었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 전작이 워낙 명작 그 자체라 비교는 애초에 불가하지만 퓨리오사의 캐릭터가 워낙에 훌륭하다보니 과거사를 풀어내도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온다. 이번에도 역시 골드블랙의 카체이싱 너무 좋고, 디멘터스는 배우가 너무 즐거워하는 게 화면 바깥까지 전달되어서 좀 웃겼다. 많이 재밌었구나…
-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 다들 이름은 알지만 잘 알지 못하는 백남준 다큐멘터리.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어찌됐든 이 분은 굉장한 거장이고 선지자였다.
- 파묘 –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고 적극 추천해서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다. 1, 2부의 장르가 갈리면서 갑자기 전환되는 것이 좀 애매하고, 2부의 장르 취향은 사실 내 취향에서 살짝 벗어나기도 하며, 2부의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는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나 고증이 이상한 부분도 없잖아 있어 정말로 훌륭했던 1부 대비 머리 위에 물음표 뱅만개 띄우며 봤지만 여기 나름대로도 민족주의의 힘도 조금 빌리고 이야기 긴장감의 양념을 쳐서 결국 그래도 재밌구나 로 결론내게 하는 힘. 그리고 정말 김고은 대살굿 장면은 훌륭했다…
- 듄:파트 2 – 듄의 영상미야 뭐 말해 모해… 모래벌레 장면도 화려하게 잘 나왔고… 다만 정말 메시아가 되는 걸로 끝난다면 아니 이 이야기가 그게 아닐텐데?ㅋㅋㅋㅋㅋㅋ
- 애프터양- 가족처럼 살던 로봇에 대한 이야기야 다소 익숙한 주제지만, 이 것을 매우 따스하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영화의 모든 캐릭터와 화면과 음악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이 동양계라고 해도 이 애매한 오리엔탈리즘은 불편한 마음… 그래도 아름다운 영화였고 다들 이걸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다 나도 조았다…
- 웡카 – 달달하고 예쁘고 좋은 이야기기는 한데 아니 나의 웡카는 이렇게 순진무구하지 않다고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순진무해한 웡카가 갑자기 그렇게 비뚤어진 으른이 된다고? ㅋㅋㅋㅋㅋ 하지만 움파룸파가 매우 웃기므로 일단 넘어갈 수 있다.
- 애스터로이드 시티 – 모든 것을 다 완전히 이해하고 살 수는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런 걸 받아들이고 잘 살아보자 라는 훈훈한 이야기를 웨스 앤더슨의 영상과 이야기 프레임으로 예쁘게 풀어냈다.
- 괴물 – 이야기가 예상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지만 좋았다. 사실 예상은 그냥 심심한 편이었고 음악 때문에 본 영화였어서..하지만 내용이 좀 더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매우 민감하지만, 가해자라고 깨닫는 것은 어렵다. ‘
-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 – 앞으로 더 연주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에 한 곡씩 녹화해서 만들어낸 리사이틀. 류이치 사카모토옹이 마치 무슨 성인마냥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 좀 웃기지만(연세들어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계시기도 하고 음악도 앰비언트 많이 만들고 하니까 그런 것 같지만 젊은 시절에는 (이하생략)) 이 공연의 영상과 음악은 정말 경건하지 않은가. 올해를 여는 영화였고 (신년 밤샘영화로 봤기 때문에) 이토록 우아한 소리와 함께 한 해를 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그 외 영상물 후기
: … 별로 쓸 게 없다 사실 다 본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보다 만 것만 이것저것.)
- 리플리: 더 시리즈 – 시즌 내내 아무 화면만 대충 스샷 잡아도 다 화보가 되는 엄청난 영상미의 시리즈. 거기다 원작이 너무나도 출중한데 앤드류 스캇 연기가 정말 예술이라… (사실 리플리 시즌 1 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 않나 싶었는데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느릿느릿한 감이 있지만 아름다운 화면과 심리 묘사로 다 이해해 줄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청춘물에 발랄한(?) 영화판보다도 좋았다. 하지만 시즌1 시기에는 나이든 배우를 쓴 만큼 역시 시즌 5까지 만들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시즌 2 언제 나오는데 얼른 내놓으라고 (맡겨두어서 떼 씀)
-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 뭐 다들 아는 그 노래 We are the world 만드는 이야기였고 역시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은 훌륭했다(뭐래)
- 흑백요리사 – 와 사실 올해 가장 열심히 본 걸 고르자면 무조건 이거 아닐까. 처음 공개되고 사람들이 하도 여기저기서 재밌다고 하길래 말이라도 통하게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봤다가 나도 나오는 날짜 맞춰서 챙겨보게 되었을 뿐이고… 정말 다양하게 내내 재미있었다.
- 던전밥 –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챙겨봤다. 애니는 애니만의 장점이 충분했지만 유일한 단점은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뒷부분 언제 만들건데…
참고로 작년에는 이랬답니다: 2023년의 영상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