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명: DALL-E Mini가 만들어낸 cojette 의 이미지 중 하나. cojette 이란 무엇인가. )
예전 대학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링크드인에서 보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멋있게 사는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실제로는 전혀 멋지지 않다고, 연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딱 이 정도의 대화. 애초에 말을 길게 할 만큼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 이는 예전이고 지금이고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왜 나의 삶은 이토록 다이나믹한데 나는 어떻게 상당히 한결같은가.
그렇다. 올해 상반기의 나의 삶은 참으로 다이나믹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졌던 먹고사니즘의 다이나믹함은 여전히 유지 중이고, 나의 커리어 이대로 괜찮은가 싶고, 나는 전보다 더 피곤하게 일하는데다 기력은 바짝바짝 닳아가는데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다고 어디다 자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부끄러울 일은 없으나 ‘그렇게 살아서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래’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를 그렇게 오래 지낼 생각은 없었지만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나 자신도 다소 고민이 많았지만, 세상과 업계에 회의가 들다보니 이렇게 살면서도 점점 더 까다롭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드는 환경도, 마음이 맞는 사람도, 마음이 맞는 일도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진다. 물론 환경도, 사람도, 일도 나를 맞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도 같다.
그래도 작년 후일담을 읽어보면 그래도 나름 마음고생을 좀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이제 이런 불안한 세상에서 떠다니는 데도 다소 익숙해져서인가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계속 지낼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라도 뭐라도 해야지. 로또라도 된다면 좀 더 여유가 있겠지만 거의 매주 로또를 사는데도 올해 들어서는 5000원 한 번 되었던가 (그리고 다시 로또로 바꾸고 망했다). 세상 사는 게 일케 부질없다.
세상은 점점 마음에 안 들 게 바뀌어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나에게 관련된 일도 그다지 잘 풀리지 않는다. 올해 번역이 마무리된 책이 어떻게 상반기 마지막 날 기준으로 출판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도 매끄럽지 않았고(그동안 누적된 것에 플러스 알파가 되면서 임계점을 넘어 다시는 IT출판쪽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고), 출퇴근하는 일이 시작되면서 기력마저 미친듯이 닳아서 요즘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못 하고 드러눕기 일쑤다. ML GDE 추천을 받아 지원해서 통과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만사가 피곤하여 간단한 활동도 하나 하지 못했다.
그럭저럭 살 만한 것은 그래도 그럭저럭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꾸준히 경제활동도 하고, 책도 내고, GDE도 하기는 했고, 제주도 여행도 다녀와서 올레길도 추가로 걷고, 아침마다 5초 이상 책도 그럭저럭 꾸준히 읽고 있고, 가끔 달리기도 계속 하고, 공연이나 전시도 짬짬이 잘 보고 있다. 집에 있는 식물들도 여전히 잘 자라고(다육이 하나는 말라가고 있지만…), 나 역시도 4, 5월 쯤에는 여기저기 아파서 좀 앓아누웠지만 한 달 남짓 고생하고 지금은 또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그래서, 뭐 딱히 크게 나쁜 짓 안 하고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다보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한다. 안정성 따위 이제는 오면 넙죽 감사히 받겠지만 안 온다고 우울해해봐야 역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냥 기력이나 좀 찾기 위해 노력해 볼 생각이다. 어떻게 노력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찬찬히 고민해봐야겠지만. 일단 달리기를 하자. 삶에 이제는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대신 가져다주는 달리기. 이제 벌써 2년여 된 달리기가 여전히 좋은 것은 역시 적당히 꾸준히 가져다주는 두근거림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가 가져다준 어떤 고마움.
며칠 전에는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꽤 둔해졌어. 기력이 부족해서.’
아마도 나는, 참 한결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꽤나 달라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의 삶은 한결같이 다이나믹하고, 사실 다음달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겪을 지도 모르겠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계속 여러 환경을 전전해 왔지만, 나 자신에게서 도망친 적은 분명히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올해 말에 후기를 쓸 때쯤 되면 또 한결같으면서도 조금은 달라진 채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재밌을 것이다. 정말로 극단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황은 어쩔 수 없더라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어떻게 해야 더 낫게 살 수 있을 지는 모른다. 그래도 일단 그냥 살아볼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서도. 하지만 그래도 이를 알고 있으니까, 일희일비하면서도 더 여러 가지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