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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2023년 상반기 후일담

4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가끔 산에 같이 다니는 지인과 산행 약속을 잡았다.

산을 가끔이나마 다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 가을쯤 부터였던가.
나는 원래 등산을 즐기기는 커녕 싫어했다. 조금만 오르막길이 있어도 어떻게든 안 다니려고 노력했다. 산을 오르는 건 너무 힘들고 굳이 왜 힘든 길을 찾아서 가나 싶은 생각 뿐이었다. 평지를 다니는 건 잘 다닐 수 있지만 산에는 너무 취약했다. 오르는 것은 힘들고 내려가는 것은 불안했다. 올레길의 오름에서 무릎을 다친 후에는 무릎도 안 좋고, 작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리를 한 달 정도 쓰지 못했으며, 발목은 만성적으로 안 좋고, 언제부터인가 고소공포증도 생겨서 높은 데만 가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지러웠다. 여러 모로 나는 등산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작년 언제인가 지인이 산에 간다고 하길래 쫓아갔는데, 어라, 요즘의 산은 생각보다 길도 잘 다듬어져있어서 내리막길도 많이 불안하지 않고, 계단은 대학원 다닐 때 이미 78계단을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리면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잘 오르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소하게나마 보람도 있고, 공기도 상쾌하고 등등, 해서 ‘어라, 아주 험하지 않고 낮은 산들은 괜찮겠는데?’ 싶은 마음에, 조금씩 지인이 산에 간다고 할 때마다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가기로 한 산은 도봉산이었다. 본가가 서울 북쪽이라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본 산이지만 한 번도 올라간 적은 없었어서, 나는 조금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간 워낙 악명높던(…) 관악산도 정상에 올라갔기 때문에, 도봉산도 뭐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 힘들지만, 몇 군데의 깔딱고개도 잘 넘었고, 정상이 곧 나오겠네…라고 생각되던 때에, 갑자기 눈 앞에 가파른 경사의 암벽에 박아둔 케이블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나왔다. 여기만 오르면 정상인데, 이런 길은 상상도 못했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여러 돌길과 바윗길을 왔지만 이건 정말 신세계였고, 나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원체 고소공포증으로 주변 경치도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서 산행을 하는 마당에 이 경사에…이런 바위를…저 케이블에 의지해서만 올라가라니 이게 등산을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와중에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불던지 더더욱 정신이 아득해왔다. 정상에 못 오르는 건 좀 억울하지만 아 난 여기서 돌아가야겠다, 하고 잠깐 고민한 후에 지인에게 말을 해야지, 라고 고개를 들어보니.

지인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고, 케이블을 잡고 올라가야 하다 보니 오르는 길은 한 줄이고, 주말이라 사람은 계속 올라오고, 여기서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눈 앞에 사람들은 잘도 올라가는데, 나는 안 될 게 뭐야, 싶어서 그냥 사람들을 따라 발을 옮겼다.

…정말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 여기서 어떻게 내려갈 지 잠시 생각할 때마다 답이 없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올라가고 보자 하는 마음만이었다.

채치수는 채치수, 신현철은 신현철, 정대만은 정대만, 그리고 나는, 나는 누구지. 내 이름을 말해봐 – 내 이름은 꼬젯,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지.

이 대사를 정말 속으로 몇 번을 중얼거리면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대체 왜 그 때 이 대사가 자꾸 생각났는 지 모르겠는데(영화고 만화고 계속 봤으니 그렇지… 당연한 것 아닌가) 정말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센 바람에 모자가 날려서 뒤로 떨어졌다. 어차피 내가 거기서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고 바람에 고소공포증으로 뒤돌아볼 생각조차 안 들었다. 아 어쩌지, 그냥 모자는 버려야겠다 근데 머리 날리는 거 어쩌지-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분이 크게 외쳤다.

‘모자 떨어진 거 내가 주웠어요! 들고 갈테니 그냥 쭉 올라가세요!’

뒤로 고개도 못 돌리고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 꾸벅해 보인 후 다시 채치수는… 을 되뇌이며 꾸역꾸역 올라갔다.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다. 길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 때는 억겁의 시간 같았고 지나온 지금은 또 잠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도봉산 주봉’ 비석이 보였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바람에 어질어질해서 증명용 사진만 후닥 찍고, 뒤이어 내 모자를 가지고 오신 분이 혼자 오셨다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해서 얼른 찍어드리고, 잠깐 숨을 돌리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가파른 길을 내려가려니, 길만 봐도 다시 현기증이 도졌다.

그 때 모자를 주워준 분이 이리이리 밟고 이케저케 내려가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 귀인 덕분에 지인과 나는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아마도 역시 초행인 것 같은 몇몇 분도 같이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심지어 꽤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도봉산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올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올라가면서도 내려오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길이었다. 하산 후에 돌아오면서 힘들지만 어찌나 뿌듯하던지. 다른 산에서 내려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그 짧고, 심지어 정신없어서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쩌면 나의 많은 것을 뒤흔들어 놓았는 지도 모른다. 겨우 많이들 올라가는 서울의 작은(?) 산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에게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날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데에 약간의 경외감까지 들었다.

I can’t go back to yesterday because I was a different person then.

올해 상반기에는 잘 쉬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호사. 생각보다도 나는 무기력했고, 계속 쉬고 싶은 시기가 길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 딱 감고 그냥, 쉬었다. 사람들이 그 기간에 무엇을 했냐고 하는데, 특별히 눈에 띌 만한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작년에 질러놓은 공연이 어찌나 많은지(공연은 보통 3-4개월 전에 예매하는 경우도 많다보니 정말 열심히도 질러놨더라(…) 정말 내가 우리 나라 문화계의 빛과 소금이다.) 공연도 전시도 열심히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주기가 있다. 가끔은 열심히 나다니다가, 가끔은 며칠씩 집 밖에 안 나가기를 반복했다. 어디 해외를 나갔다 온 것도 아니고, 짬짬이 강원도 지인 댁이나, 울산이나 부산 등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딱 그 정도. 정말로 집에서 그냥 누워있는 시간이 상당수였다. (고양이정원 게임을 열심히 한 것은 안 비밀.)

날이 풀리자마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서 다행히다. 달리기도 안 했으면 정말 집 밖에 안 나가는 날이 훨씬 많았을 것이며, 나의 멘탈도 지금처럼 유지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달리기도 정말 싫어했는데 어떻게 시작할 생각을 했는지 3년 전의 나님에게 다시금 박수. 이제는 안 쉬고 6km를 넘게 달릴 수 있고, 일단 7km까지는 점차 늘려보는 것이 목표다. 대략 50분 달리면 7km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에 오래 전부터 작업했던(후기 참고) 책도 출간되었고(예고는 작년에 떴지만), 매달 아웃스탠딩에 글도 올리고, 새로운 책에 참여도 하고(책 소개 참고), 짬짬이 발표와 여기저기서 강의도(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더 오는 요청 안 막습니다 웬만하면 다 받습니다) 진행했다. 그간 못 봤던 기술 문서를 조금 보고 있고, 다행히 아직도 써야 하는 글들이 좀 남아있다.

쉬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했다. 이런저런 내적의 독기를 빼내는 데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어느 정도 해독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초초함이 은은하게 있지만 모든 것이 내키지 않는 그런 상태. 사람들도 그럭저럭 만났고,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적은 사람과 나약한 연을 맺고 사는 나의 하소연이란 보통 겉돌기 마련이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얼른 다시 회사에 소속되어 안정적인 삶을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고, 몇몇 기회가 닿을 듯도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안 맞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불쾌한 일도 있기도 했고, 가면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지 모르는 것 같기도 했고.

나 조금 많은 일이 있었어. 힘들다 진짜-

…라기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평온하다.

세상은 내가 예상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산행을 하며 지인(이하 G)과 대충 이런 대화를 했다.

G: 다 액땜일거에요.
나: 액땜이라는 거는,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올해는 그런 일이 없겠구나, 가 아닌 것 같아요. 올해 이런 일도 겪어냈으니 또 그런 일이 일어나도 잘 겪어낼거다, 혹은 대비할 수 있겠다, 같은 것 아닐까요.

G: 모 작가가 나온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본인이 나이를 먹어서 더 좋은 점이 있다고…(이하 생략)
나: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전의 저라면, 지금 상황을 못 버텼을 거에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요.
G: 오. 역시 나이대가 바뀌면서 얻는 경험치라든가 단단해진다든가 그런 걸까요.
나: 그렇다기보다는…화내고 우울해할 기력이 없어서…일 것 같아요. 자기를 깎아내리는데도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정말로, 지금의 나는 놀랍도록 평온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데도 평온하다. 불쾌한 일 따위,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기억해두면 되지 그걸로 나를 괴롭히고 있을 이유는 없다. 좋은 액땜이었고,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잔뜩 있을 것이지만 상관없다고 지나가면 끝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만큼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시는 좋은 분들도 계시다. 개인적 사정은, 그냥 정말로 다 내려놓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다. 뭐 사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많은 좋은 물질은, 평안한 나 자신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독거노인(…)의 삶은 팍팍하지만 나 하나 죽기밖에 더 하겠니,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다.

그래서, 천천히, 내가 혼자서 오롯이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침에 원치 않은 모닝콜도 주는 사회는 하수상해서 사회안전망에서 한 발 떨어져 있기에는 그다지 좋은 시기가 아니란 것은 알고, 당연히 나의 경제적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뭐 회사 엑싯을 했다거나 스톡이 터진 것도 아니고, 재테크를 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로또는 언제나 꼴등도 되지 않고, 나에게 유산을 물려줄 숨어있던 친척 같은 판타지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대책없이 살아도 괜찮은가 싶긴 한데, 일단은 모르겠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달라지려나.

일단은 내가 안정적인 기회가 오지 않음에 아등바등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 이름으로 장식하지 않은 나 자신이 어디까지 무엇으로 설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만들어가지 않는 것에 휘둘리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러다 어디로 흘러갈 지는 나도 모르고, 이러다 예상치 못한 매혹적인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그간과 전혀 다르게 살 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스울 정도로 다시 예전과 똑같은 형태로 돌아가 있을 수도 있고. 세상이 바보가 아니라면 나님을 어떻게든 써먹지 않겠는가. 나는 어떻게든 물처럼 흘러가다가 어딘가에 담기거나, 아니면 계속 흐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조금씩 더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맞는 형태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나는 이전의 나로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고,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모습일 것이고, 멀리서 보기에는 더 다를 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작든 크든 다양한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이제는 내가 기회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해 보려고 하지만, 어쨌든 초내향성 인간에게 아주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예전에도 상당수 그랬지만 앞으로도 더더욱 오는 제안 안 막고, 갑자기 연락해도 괜찮으며, 재밌는 일거리는 환영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일에 마감을 매우 잘 지키며, 어쨌든 일 못한다는 소리는 거의 안 듣고 살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봅니다. 빠밤.

정리하고 싶은 생각들도 있고, 사람들과 정제해서 나누고 싶은 생각들도 잔뜩 있다. 일하면서 나 혼자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고, 사람들과 생각을 어느 정도 나누어서 좀 더 많은 공감대를 구축해 둔 다음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머릿속의 생각으로는 이미 책을 몇 권을 썼겠지만,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단편마냥, 머릿속으로만 걸작을 수십권 쓰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것들을 어떤 형태로 어떤 대상에게 전달해야 할 지 다듬어 볼 생각이다. 나의 이력은 어쩌다보니 화려하고, 각각의 상황에서 각각에 필요한 것을 각각에 맞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면 정신없는 것도 있어서 그런 것도 좀 천천히 다듬어 두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또 세상의 필요와 나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나 역시도 항상 눈 앞의 일에 매달려있다보니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좀 넓은 시각으로 고민해 보는 것도 재밌는 과정인 것 같다(물론 눈앞의 먹고사니즘에 대해서 너무 생각이 없는 것은 정말 좀 어떻게든 해야겠지만 말이다). 심신의 건강만 적당히 지켜내면서, 내가 무엇을 하면서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면서,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것이다. 아마도 후회도 하고 힘들기도 할 것이고, 채치수는 채치수 정대만은 정대만-을 몇 번을 읊게 될 지 모르겠고, 고민이란 걸 어느 규모로 하게 될 지조차 가늠이 안 되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래도 상관없다.

그 이후에 다녀온 수락산은 중간에 짧게 호흡곤란도 겪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고, 역시나 다녀와서 뿌듯했지만, 산을 오르면서 ‘여기를 내가 못 오를 것이다’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재밌었고, 더 험한 길도 어떻게든 지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가르침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아마도 그런 가르침도 구할 수 있을 곳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라고 만들어놓은 길에 내가 못 갈 리 없고, 어떻게든 갈 것이다.

다음 달에는 아마도 북한산에 갈 것이고, 그 이후에도 또 다른 산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다음 달에는 북한산에 가요!’라고 말을 꺼냈다. 약속을 잡고 나서, 조금 두근두근해졌다. 이번에도 산행은 즐겁겠지. 나님은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 라면서 산에서 내내 헥헥대고 왜 산에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 라면서 오르는 내내 나를 원망하면서도, 어쩌면 생각보다도 더 힘들어서 중간에 또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든 올라갈 것이다. 어쩌면 비가 오는 등 못 오를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나만의, 조금 이르고 조금 긴, 하반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길이 어떻게 될 지 모르고, 아마도 매우 가파르고 불안한 길일 걸 알면서도, 역시나 조금 두근두근해진다. 어디가 되었든, 즐거운 산행이 되길.

(그래서 다소 이른 상반기 후기 겸 하반기 계획(?)을 쓰게 되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데이터 과학자 원칙- 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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