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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명명된 경력 (feat.프랙셔널 리더십)

이력서를 갱신할 때마다 늘 마음이 답답해지는 지점이 있다. 나의 이력 곳곳에는 프리랜서 기간이(현재 포함) 일부 끼어 있는데, 이 시기의 업무 중에는 프로젝트 형태로 명확히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소위 ‘임시 리더’ 로서 데이터 조직을 세팅한다거나 조직을 리딩하면서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든가 하는 형태의 일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중요한 일이라 ‘임시 리더’, ‘파트타임 리더’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 건 그 일의 무게를 온전히 싣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력 안에 뭉뚱그려 써두기는 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이력서를 타인에게 보여줄 때는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그리고 그 설명의 결과 역시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사회의 시스템과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일의 가치도 충분히 중요했기 때문에 기회와 상황이 맞으면 기꺼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최근 이런저런 해외 아티클을 읽던 중 프랙셔널 리더십(Fractional Leadership, 일부 국내에 소개된 말도 발음대로 옮기고 있어서 그대로 사용함)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단어는 생소한데 개념은 너무 익숙했다.

프랙셔널 리더십이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리더급 사람이 여러 기업에 자신의 리소스를 분할(Fractional)해서 제공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리더, 임원급 레벨도 회사에 완전히 소속된다기 보다는 쉽게 말하면 파트 타임, 계약직으로 해당 역할을 맡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게감있는 위치에 성급히 리더를 고용하기에 리소스가 부담스럽거나, 회사 여건 상 빠르게 변화하는데 특정 분야 전문가에게 권한과 함께 단기로 채용할 필요가 있는 등 다양한 리더십의 ‘공백’을 메워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전통적인 기업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기업에서 리더십이 중요한데 그것을 제한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면도 있지만 리스크도 크다고 생각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면면이 적절한 리더를 적기에 채용할 수 있다면 사실 그보다 좋을 수는 없지만, 현실은 항상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여러 애매한 상황으로 인해 알맞은 리더를 고르지 못한 채 공백만 길어지거나, 급하게 리더를 채용했는데 회사의 방향성과 어긋난다면 이 파급력은 실무자 대비 훨씬 크다. 게다가 점차 조직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기술 및 업무 형태도 유연하게 변화하는 오늘날 기업에서 언제나 적절한 리더십 인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보장하기도 어렵다. 이런 경우 프랙셔널 리더십은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제 ‘프랙셔널 리더십’이라는 일종의 마케팅 용어도 붙고, 프랙셔널 리더십 중심 구인/구직 사이트도 생기고(해외 기준), 사례들도 나오는 것을 볼 때 이런 업무 형태는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장단점이 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리더가 자주 교체되는 상황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전반적인 방향성은 기업에서 이끈다고 하더라도 해당 조직의 단기 방향성은 리더가 자주 교체됨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해당 기업에서 조금씩 계단을 밟아가며 오래 일하고 싶은 경우 상위 롤모델이 흐릿해진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흔히 말하는 피라미드 구조에 따라 가뜩이나 적은 리더십 레벨 일자리가 더 적어지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업무 형태가 안착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리더가 부재한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재택 근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흔히 말하는 ‘사내정치’ 구조 역시 변화시킬 수 있다(사람이 셋만 모여도 정치가 생긴다는데 아예 사라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장단점은 결국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업에서도 프랙셔널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고 기준치가 있다면 상호 신뢰를 쌓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적당한 리더를 채용하면, 어느 정도는 그 리더가 회사의 일부가 되어 일을 장기적으로 진행하도록 맡겨둔다. 하지만 이 새로운 고용 형태는 제약된 시간이 있어 무작정 ‘회사의 일부’라고 맡길 수 없다. 기존의 엉성한 로드맵보다 좀 더 세부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그 안에서 프랙셔널 리더십이 돌아가길 기대해야 한다.

또한 프랙셔널 리더도 일단은 해당 리더십의 자리를 채우는 엄연한 ‘리더’다. 정규직 직원과 마찬가지로 주요 리더십 접점에 참여시켜야 하고,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프랙셔너 리더는 매일 매시간 상주할 수 없으므로, 기업에서는 그들이 필요할 때 적절한 위치에 있도록 하고, 지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여러 곳의 리더십을 맡는 경우 조직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는데, 이건 개인의 역량 차이일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한 번에 여러 군데의 리더십을 맡은 적은 없다. 프랙셔널 리더 역할을 할 때도 병행하는 일은 프로젝트를 참여한다든가 강의를 한다든가 하는 형태였어서 이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말하기도 어렵다. 솔직히 쉬워 보이지는 않고, 기업과 프랙셔널 리더 간의 상호 신뢰와 그에 걸맞는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또한 리더십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보다 해당 기업과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하는 능력과, 여러 일 간의 빠른 컨텍스트 스위칭이 필요하므로, 이런 능력을 길러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다행히 데이터를 오래 다루다 보니 이런 능력을 꾸준히 기를 수 있었어서 도움이 되었다.

꽤 오래 해오던 일이지만 ‘이름’이 없어서 애매하던 것에 ‘이름’ 이 붙는 다는 것은 일단 반갑다. 마케팅 용어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명명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feat. 센과 치히로의 모험). 그리고 이름이 붙는 것은 결국 시장의 수요와 이에 대한 공급이 보다 정교하게 맞춰질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채용 형태나 문화를 생각했을 때 이 모델이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확장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존에도 조금씩 있어왔고 현재에도 암암리에 이런 형태로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기존 구조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새로운 구조에서 해결될 수 있다. 프랙셔널 리더십도 아마 이런 새로운 구조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향후에도 이런 형태의 업무 제안을 받는다면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즐겁게 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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