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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피아노(4)

자신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들으며 연주하기

피아노를 독학으로 연습하므로, 이 시간에는 내가 학생이자 선생님이다. 물론 이런 경우 내가 나에게 선생님으로써 시연은 보여줄 수 없지만, 하농은 일단 패턴이 단순하고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가 확실하며 일단 예전에 이미 지겹게 쳤던 교과서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다. 연습곡의 경우에도 다행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연주한 클래식 곡이다보니 녹음과 동영상이 넘치도록 있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알면 어떻게 연습을 해서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의 감은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내가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약하기 때문에 어디를 개선해야 한다’에 대한 정보를 준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치면서도 내가 어디가 치기 어렵고, 어디가 삐그덕거리는 지를 대충은 알지만, 늘 가장 큰 실수는 나는 신나서 무언가를 했고 거기에서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런 경우는 누가 짚어주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하는 게 굳어지고, 나중에 고치려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짚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네.

물론 내가 피아노를 혼자 연습하기로 한 것은, 나의 청각을 믿기 때문이고, 피아노를 치면 일단 소리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듣는 것’이다. 심지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라는 옵션이 추가된다. 그냥 듣는 것은 쉽지만, ‘의식적으로 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심지어 피아노를 치는데 집중하면서 의식적으로 듣기는 말처럼 잘 되지 않는다.

예전에 고민 상담을 하다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듣지 않아요. 한 번 꼬젯님도 말을 할 때, “들으면서 말하기”를 시도해 보세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아, 생각이 날 때마다 시도해 보고 있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나는 말이 줄었다. 그리고 지금도 의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종종 까먹고, 생각났을 때 시도해보면, 여전히 어렵다.

피아노도 결국은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인지라, 말하기와 비슷하게, 의식적으로 듣기를 하면서 독학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신경을 쓸라 치면 이미 한참 지나가 있고, 나중에서야 알아채면 같은 실수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었네 싶어지기 일쑤다. 물론 늦게라도 알아차린 것이 어디인가 싶다. 아주 주의해서 듣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잘못된 부분도 너무 많아서 그것만 인지하기에도 벅차서, 귀기울여 들을 겨를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름 귀기울여 내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놓치기가 쉽다. 물론 뱅만년전 이야기지만 나는 피아노를 그래도 그럭저럭 많이 쳤다보니, 내가 아무리 못해도 이렇게까지 못하는거야…?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물론 첫날부터 ‘와 꼬젯 진짜 못 쳐!’를 외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치면 나아질 것이라고 조금은 기대했다. 이렇게까지 못 칠 일인가. 이렇게까지 늘지 않을 일인가. 그 누가 머리는 못 기억해도 몸은 오래 기억해서 자전거 같은 것도 다시 타면 잘 탄다 이런 말을 했는가. 내가 운동신경이 바닥인 건 알고 있었지만 손가락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내 손가락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농을 칠 때는 왼손 4, 5번 손가락의 힘과 속도가 확연하게 떨어지고, 샵이나 플랫이 3개 이상 붙어 있으면 악보를 읽는데 시간이 걸리며 종종 헷갈리고, 오른손과 왼손이 일부만 같고 일부만 다른 패턴이 나오면 요주의다. 연습곡은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솔직히 너무 못 쳐서 그만 듣고 싶다. 누가 내가 치는 게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들어야 한다. 잘 치고 못 치고가 먼저 판단되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 잊는다. 어느 부분부터 개선해야 할 지를 알고, 무엇부터 연습해야 할 지를 깨닫는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현재를 직시하고 개선점을 찾고, 나갈 방향을 찾는 것이다. 타인이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고, 일단 여기에서는 나 혼자서 해보기로 했으니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더 선명한 시야로 앞을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소리를 의식적으로 듣기 위해 집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나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 소리가 나를 밑으로 끌어내린다고 해도. 그리고 과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를 잘한다, 못한다 같은 뭉뚱그려진 평가의 방향으로 보내지 않는다. 현재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고 무엇을 먼저 연습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진단하기만 하면 된다. 가치평가가 자꾸 들러붙으려고 하지만, 계속 열심히 떼어내고 있다. 다행히 타인의 귀에까지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정도의 노력이다. 남들이 들으면 또 어떨쏘냐, 라고도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프로도 아니고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쩔텐가.

손가락이 좀 더 잘 움직였으면 좋겠다. 연습곡을 좀 제대로 쳤으면 좋겠다. 약 2분 30초짜리 곡인데 반을 치는데도 4분이 걸리는데 얼른 2분 30초 이내로 완곡하고 싶다.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오래 걸리지 싶다.
하지만 내가 지금의 연습곡을 완곡을 하지 않고 멈추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의식적으로 듣는 훈련 자체도 나에게는 꽤 즐거운 경험이다. 피아노로 완곡할 수 있는 곡을 하나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이 감각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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