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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피아노(2)

어릴 때 피아노 한 번 쯤 쳐 본 흔한 사람 중 하나

피아노를 마음에서 한 번도 완전히 떠나보낸 적은 없는 것 같지만, 피아노를 그만둔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10대 초중반까지 피아노를 배운 것이 전부다. 그나마 조금 달랐던 것은, 내가 그 시절에는 피아노를 그래도 잘 치고 많이 치는 편이라고 착각했었던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개발이 덜 된 작은 동네였다. 피아노 학원도 내가 초등학교(그 시절에는 국민학교) 3학년쯤 처음 생겼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이미 언니들이나 그 동네 애들이 주로 다니는 주산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피아노 학원은 주산학원 바로 앞에 있었고, 가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나다니면서 듣는 소리가 예쁘기도 했고, 노래 듣는 것은 좋아하던 편이라서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노는 게 제일 좋아 모드인 사람이 학원을 두 개를 다닐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마침 주산과 암산을 학원 최고 레벨로 따서(4단인가 5단인가 가물가물하다…) 학원에서 그냥 무료로 다니라고 해서, 어머니께서 그러면 혹시 다른 학원 다니고 싶으면 가자고 해서, 그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악기 중 그나마 할 줄 알던 것은 리코더 정도였는데, 손으로 음계를 친다는 것도 신기했고, 소리도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재미를 붙이니 자연히 진도도 빨리 나갔다. 선생님도 칭찬도 종종 해주셨고, 그러다보니 대회 같은 데 나가서 상도 종종 받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니 피아노 학원도 무료로 가르쳐 줄테니 그냥 다니라고 해주셨다 (아무래도 중학교 갈 때쯤 되고 애들이 이 시기쯤 그만두니 그런 것 아니었을까…)

그러다보니 나는 내가 피아노를 잘 치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거 아예 피아노를 내 미래로 생각해볼까? 하고는 예중 입시를 조금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내가 부족한 게 확실히 있다는 것도 알며, 초등학교 6학년 말이면 한참 꿈 많을 시절이고 심지어 나는 범죄자가 아닌 선에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예술로 아예 진로를 정해버리는 것은 조금 두렵기도, 아깝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조금 두고 보자고 생각하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학원과 (역시나 그 때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어학원 원장님도 나를 꽤 예뻐해 주셨고, 한 달 지나니까 나보고 고 3까지 여기서 다니자고 하셨으나(…) 역시나 노는 게 제일 좋아 모드인 나는 학원을 두 개 다니는 것은 버거웠고(…) 일단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피아노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그 때, 키가 쑥쑥 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까지는 앞자리 쯤에 앉았는데, 중학교때 키가 1년에 10cm씩 크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데에 사실 손이 작은 데에서 오는 한계도 꽤나 있던 지라, 좀 더 피아노 치기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키는 크는데 손발은 안 크더라. (지금도 키에 비해 손발이 작은 편이다.)

그리고 그 때쯤에는, 여기저기 콩쿨을 나가면서 날고 기는 애들도 많이 보고, 점점 한계도 많이 느끼고, 내가 피아노를 잘 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악보를 잘 읽는 편이고, 듣는 귀도 좋은 편인 것 같고, 곡도 연습하면 무난하게 치기는 하지만, 박자 감각이 정말 부족하고, 손가락도 아주 잘 움직이는 편도 아니고 그 와중에 짧고, 그렇다고 해석이 탁월하다거나 학습이 빠르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피아노를 귀와 머리로 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중 2때쯤, 예고 입시를 준비하려면 지금쯤은 마음의 결심을 해야 하니까- 라고 생각하자 마자, 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아예 마음을 접어버렸다. 전혀 아쉽지 않았는데, 별로 놀랍진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걸 후회한 적은 정말 단 한 순간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 그 자체여서 그나마 그만큼 오래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냥 흔하디 흔한,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워 본 친구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

그래도 그 때의 기억은 마음에 남아, 언젠가는 취미 정도로는 피아노를 쳐야지, 하고 생각했다. 잘하지 못한다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그래도 짧게 친 것은 아닌데 한 번도 지겹다거나 재미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원래 관성이 굉장히 강한 유형이라 한 번 무언가를 쉽게 질리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피아노를 치는 것은, 특기는 아니어도 취미는 될 수 있겠다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뿐이었고, 나의 취미는 늘 너무도 많아서 거기에 피아노까지 늘릴 여유는 나지 않았다.

원래 취미는 여유있을 때 하는 게 아니다. 여유라는 것은 생기지 않는다. 놀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많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왔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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