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업이 데이터를 보는 사람이다보니, 업 외의 일반 생활에서까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반은 의도적으로, 반은 귀찮아서 꺼리는 편이다. 아무래도, 평소 생활에서까지 너무 데이터 중심으로 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으며 일에 대한 흥미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이유, 그리고 그런 수치가 줄 수 있는 스트레스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일상에서의 숫자 관리를 얼마나 안 하냐면, 나는 그 흔하디 흔한 체중 기록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독서의 경우에는 의도치 않게 기록을 하게 되면서 수치 관리를 하게 되었다. 나의 가장 큰 취미는 독서로, 1년에 보통 120-130권(작년에는 좀 적게 읽었지만 그래도 110권은 넘겼다)을 읽는다. 전에는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코스를 돌았지만, 이제는 사람이 게을러져서인지 여유가 없어져서인지 리뷰도 잘 남기지 않는다. 또한 여기저기 남겼던 리뷰들은 (물론 일부 백업은 되어 있지만)이제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서 찾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내가 이 책을 읽었는지, 읽었다면 여기서 어떤 내용이 인상적이었는지,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등등을 떠올리는 것이 약간 힘겨울 때도 있다. (심지어는 같은 책을 두 번 산 적도 몇 번 있다.)
그래서 한 3-4년 전부터, 읽은 책을 리뷰는 다 쓰지 못하더라도 간단하게라도 기록해 두기로 했다. 이 때 생각했던 필요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항상 들고 다니면서 쉽게 기록할 수 있을 것.
- 기록 데이터를 다운로드/백업 받을 수 있을 것. **
그래서 떠올린 것이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초창기여서 독서 기록 앱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국내 iOS사용자도 지금보다 적었어서 iOS용 국내 도서 앱은 더욱 적어서,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앱은 iReadItNow라는 앱이었다. (이 앱을 꼭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좋은 앱이고 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해 왔지만, 찾아보니 다른 좋은 앱들도 많은 것 같다. ) 처음에는 그냥 독서 로그를 남기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한 날짜에 책을 ISBN 스캔/검색 으로 등록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 완료 표시를 하고 별점(5점 만점)을 남긴다. 그리고 가끔 책을 사거나 찾을 때 웬지 익숙하다거나 관련 작가 책 등을 찾아보고 싶을 때 뒤져보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앱을 활용하니, 기본적으로 어떤 책들을 읽었고, 얼마나 책을 읽었는지 통계 수치를 내 주었다. 어차피 내가 수고롭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보니, 그냥 재미로 가끔 보고는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책의 기록이 쌓이고, 이는 일종의 시계열 데이터가 되었다. 게다가 하나의 플랫폼에 꾸준히 기록을 해왔기 때문에 데이터의 기간 면에서나, 품질 면에서나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되었다. 그러던 중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어떤 의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추이그래프를 보다보니 에 따라서 ‘내가 이 달에는 왜 이렇게 못 읽었을까’ ‘이 달은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하면서 독서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을 돌아보게도 되고, ‘내가 이런 책을 읽으면 천천히 읽게 되는구나. 이런 책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라든가 ‘이 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우울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이런 식의 독서 패턴이 생기는구나’ 라는 식의, 취미 생활에 대한 일종의 회고도 하게 된다.
또한 별점 그래프의 변화 추이를 보면서 ‘점점 책을 고르는 눈이 생기는구나’ 라든가 ‘너무 책을 편향적으로 읽는 게 아닐까?’ 하는 등의 방식으로도 회고를 하게 된다.
이 외에 재미로 보는 것은, 나의 경우에는 주로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데, 여기에서 작년부터 ‘올해의 책 개인별 페이지’를 만들어준다. 여기서는 주로 내가 책을 얼마나 샀는지지름신을 얼마나 불렀는지 라든가 어떤 책을 많이 샀네편향된 취향 등을 알 수 있다. 이 역시도 시간이 흐르니 작년 대비 올해 얼마나 책을 샀는지 라든가 이 때는 왜 책을 안 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역시도 책을 사는 양이 충분해서다. 보면서 책을 작작 좀 사야겠다는 반성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취미 생활이란 순수한 ‘개인을 위한 소비’의 시간이고, 그런 데에 어떤 잣대를 들이댄다든가 의무를 얹는다든가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큰 부담 없이 이런 식으로 취미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에도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런 긍정적인 데이터를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싶다.
시계열 데이터는 그 자체로도 많은 의미가 있고, 이를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데이터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아직 이를 잡아서 사용하지 못해서 괜히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굳이 어려운 것을 쓸 필요도 없고, 요즘은 여러 수단도 많아서 점점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어떤 것이든,충분한 시간동안 균일하게 기록해서 볼 수 있다면, 이를 다양하게 잡아서 어디에든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내용은 지난 12월 19일에 있었던 [생활 데이터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갑자기 발표를 하느라 자료도 없이 그냥 발표를 했는데 ,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한 번 정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https://brunch.co.kr/@cojette/11 에서 옮겨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