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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등산의 후일담

(지난 주에 직접 찍어온 백록담)

지난 주에는 한라산을 다녀왔다. 꽤 충동적인 계획이었다. 그간 제주도를 그렇게 갔어도(특: 올레길 최근 1-2년 안에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다 돌았음) 한라산을 올라본 적은 없다. 정확히는, 꽤 오래 전에 친구가 한라산을 가자고 꼬드겨서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 가는 척을 하다가 눈이 많이 와서 힘들다며 정말 30분 정도 가는 척만 하다가 돌아온 적은 있다. 그리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내 의지로 산에 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참고). 하지만 산에 대한 광기(?)는 점점 커져만 갔고, 올레길을 다니면서도 오름만 나오면 가기 싫어서 끙끙대던 사람은 어느덧 아이젠을 끼고 알아서 겨울에도 산행을 하고, 거의 한 달에 한 두 개의 산은 가는 사람이 되었다. 진지하게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는데 내가 벌써 죽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보았는데, 일단 아직은 아닌 거 같다.

그러다 못해 이제는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혼자라도 산에 갈테야! 하는 상태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많은 것과 달리, 등산은 여전히 혼자 하는 것에는 많은 걱정이 따르기도 하고, 권장하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를 크게 나눠보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1. 사고 안전 상의 이유 – 등산은 아무래도 아주 약간의 위험 요소가 있다. 특히 단기적/장기적으로 꽤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활동이다보니, 갑자기 체력이 떨어져서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고의 위험이 있다. 게다가 나는 내 체력을 신뢰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사고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 치안 상의 이유 – 산은 아무래도 외지고, 불미스러운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혼자 다니는 것은 전반적으로 권장하지 않는다.
  3. 길을 잃는 경우 – 가뜩이나 사람들도 적은 데 길을 잃으면 더 답이 없다. 길이 아는 곳은 더 위험할 수도 있고 상황 파악도 어렵다. 게다가 나는 길치다. (….)

나는 산에 가고 싶었다. 게다가 시간이 있을 때 다녀와서 두고두고 뿌듯할 산도 한 번 찍고 싶었다. 하지만 두고두고 뿌듯할 산을 가는 것은 정말로 사람들과 일정 잡기가 쉽지 않고,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등산을 싫어한다 orz. 거기다 내가 산에 가고 싶어! 노래를 부른다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내 체력을 믿지 못하므로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곳을 갈 수 있을 리 없다 (뭐 주변을 가는 건 어떻게 되겠지만 뭔가 정상을 찍고 싶지 않은가!! ). 그래도 산에 가고 싶었다. 나의 삶에서 이렇게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너무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 한 군데라도 더 가고 싶었다. 가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뭔가 여기도 가봤다! 같은 것을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들어온 것이 한라산이다. 한라산 백록담 가는 경로는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개는 예약제로 들어간다. 게다가 길 갈림이 없다. 게다가 시간 제한이 있다보니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시간대에 간다. 사고가 나도 발견되기 쉬울 것이고 길을 잃을 리도 없고 치안상으로도 훨씬 안전하다.

…라고 판단이 선 순간 쓸데없이 넘치는 실행력으로 바로 며칠 후의 숙소와 비행기표와 렌트카를 예약했다. 물론 등산로도 예약했다. 성판악과 관음사가 있는데 아무래도 초행에 혼자 가는 지라 좀 더 쉽다는 성판악 코스로 예약했다.

그리고 며칠 후 비행기를 타고 갔고, 잘 올라갔다 왔다. 사고도 안 나고 길도 안 잃고 다친 데도 없이 잘 다녀왔다 (관절이 좀 뻐근해서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그냥 뻐근하고 말았다).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중간에 쉬고 사진찍고 옆의 사라오름 살짝 다녀오는 것까지 다 해서) 총 산행에 9시간 5분이 걸렸고 그게 만만한 경험은 절대 아니었다. 들은 대로 길이 험하거나 한 건 없고 초보도 다녀올 수 있는 완만한 길이다.
…체력만 되면.
나의 비루한 체력은 막판 고도 100미터 남겨둔 즈음에는 거의 몇 발짝 걷고 옆의 난간에 젖은 빨래마냥 늘어져 있기를 반복해야 했고, 하산길은 보통 즐겁게 내려오는 편인데 그 끝나지 않는 길에 발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등등. (돌길이라 발이 꽤 아프다. 등산화를 신었기에 망정이지 다리에 힘도 다 빠진 상태에서 이 돌길 밟다보면 발목 삐끗할 일 많을 듯. )

그리고 벌써 1주일쯤 지냈고 아직은 산에 가고 싶지 않다(…). 다리의 여독은 아직 덜 풀린 것도 같다. 뭐, 이렇게 있다 보면 더워서 갈 생각이 안 들지도. (물론 이미 6월에도 트래킹을 갈 일정이 있지만.) (그리고 일단 등산 스틱은 이제 좀 사자…)

그래도, 이제 나는 우리 나라에서 자연적으로 제일 높은 곳을 가봤어! 라고 말할 수 있고, (험하지는 않다고 해도) 9시간 넘게 산을 타봤어! 라고 말할 수 있다. 딱히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아마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 산행의 설렘과, 긴장과, ‘얼른 끝이 보이면 좋겠다~’라고 흥얼거리던 되도 않는 멜로디는 아마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새로운 나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늘 같은 것 같아도, 조금씩 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의 환경이 또 어떻게 달라진다고 해도, 혹은 하루 아침에 전혀 안 하던 것을 한다고 해도, 아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그런 환경과 마음에 맞춰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확신은 아니더라도,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확률이 좀 더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산에 혼자 가는 것은 제약사항이 많고, 다음에는 어느 산을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혹시 등산에 관심 있으신 분…?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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