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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가의 재능과 능력치

간혹 잊을 만하면 SNS를 타고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재능’에 대한 이야기다. 타고난 재능, 애매한 재능, 혹은 재능이 없는 것과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

아마도 어떤 분야는 재능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운동 선수라면 당연히 타고난 신체 조건이 운동을 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치리라. 물론 노-력을 해서 재능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굉장히 드물다.

나는 다행히(?) 운동 선수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어떤 재능을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재능이란 것은 사실 있으면 좋겠긴 하겠지, 그리고 잘난 사람은 역시 부럽다. 내가 무슨 득도한 사람도 아니고, 지금이라고 이런 마음 정도도 없을 리 없다. 다만 예전에는 내 주변에 발로 차이도록 많은, 넘쳐나는 머리좋은 사람들에 대한 큰 부러움, 그리고 거기에 다다를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원망같은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행히 전만큼 잘난 사람이 주변에 많지도 않거니와-어쩌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다들 멀리 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은 것일까. 아니, 그냥 나를 인정하고 내 일에 충실하기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하고 있는 데이터 분석이란 일은 어떤 특정한 재능이란 것이 그다지 눈부시게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필요한 능력도 타고나는 것보다는 꾸준함에서 더 키울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데이터 분석가의 능력에 벤다이어그램을 자꾸 내미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그만 좀 해!’라고 투덜거리지만, 그 화려한 집합 그림을 부인할 수는 없고, 어쩌면 그렇게 여러 분야에 대한 균형감각이 필요한 일이다보니 한 분야만 잘 하는 사람이 ‘정말 잘한다’라는 말을 듣기 어려운 일이 데이터 분석이고, 그러다보니 어떤 특정한 재능이 빛나지 않는 분야 역시 데이터 분석이다. 혹자는 데이터 하는 사람들이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여러 분야들 중 특정 분야가 강조되는 경우도 분명 있다. 그러나 강조되는 영역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각각 달라서, 어떤 때는 통계학이 빛을 발하다, 어떤 때는 컴퓨터 능력이 높은 경우에 유리하고, 어떤 때는 경제학이 필요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도메인 지식으로 대부분을 해결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때 잘 했던 사람이 한 때는 두각을 못 드러내기도 하고, 한 회사에서 능력자였다고 다른 회사에서 꼭 잘 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다보니 어쩔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운인가 싶을 때도 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최근에 사람을 채용하면서 여러 메일을 받았고, 간단히 상담(?)을 하다가 (아무래도 맥락이 채용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니)’본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라든가 ‘이 정도만 해서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데이터 분석가로서 중요한 능력이 무엇일까요’, ‘분석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계속 이 일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고, 아마 다른 사람이 물어본다고 해도 비슷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곳을 뛰쳐나갈 재능도, 이 곳에 남아있을 재능도 없다고 한숨을 쉬던 나도 아직까지 계속 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이제는 ‘재능 뭔지 모르겠지만,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쪽 일에서 어떤 능력치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계속 버티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이러다보니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너는 몇 년차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수많은 데이터 분석에서 필요한 능력 중 좀 더 많이 메꿔야 하는 능력치를 판단하고, 그 능력치에 한해서 대략 어느 정도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했다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가늠해서 서류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하는 것 뿐이다. 이 것도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또한 이런 능력치가 없다고 해서 있는 사람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냐면 그럴 리 없다. 누구는 같은 연차의 사람에 비해서도 통계를 좀 더 잘 할 것이고, 누구는 파이썬을 좀 더 잘 할 것이다. 누구는 고루고루 조금씩 할 줄 알 것이다. 그 것에 대해서 현재 나의 상황에 잘 들어맞지 않을 뿐이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일렬로 줄을 세울 수 있고 그 것을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일단 내가 그런 기준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도 내가 막 못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여러 능력에 발을 대놓고 걸치는 분야라는 게 이럴 때는 참으로 좋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 사람을 찾을 때도 그냥 팀에서 부족한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구할 뿐이다. 절대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판단할 능력도 없고 존재하면 유니콘이겠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라면 전반적인 문제를 논리적으로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서 해결하는 능력과,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객관성, 계속되는 다양한 학습에 대해 과한 부담감을 갖지 않는 것,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논리적 문제 해결능력과 데이터에 대한 명확한 이해라니, 사실 이 것도 엄청난 능력 아닌가. 보통 분석가를 가리켜 ‘이 사람 분석 일 잘한다’라고 이야기할 때를 생각해보면 이런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세부 분야에 대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은 뭘 잘한다’ 하고 세부 분야를 짚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게 돋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능력은 다행히 타고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분석 일을 오래 하다보면 점점 쌓이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연차를 고려한다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연차에 따라서도 능력이 쌓이는 것은 각양각색이고, 안타깝게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구에 따라 전체 능력이 빛을 발하기도, 발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위에서 쌓아올리는 능력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필요성도 아마 다를 것이므로, 어쩌면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장소와 때를 만나는 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은 사실 무슨 일을 하든 가장 큰 능력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저 필요한 것을 키운다는 전제 하에서, 본인이 원하는 능력을 쌓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 일은 다행히도 꾸준히만 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이 수많은 필요한 것들 중 어떤 도구들을 갖출까 고민하고 그 도구를 천천히 키워간다면, 크게 어떤 재능에 연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항상 남의 떡이 더 커보이기는 하겠지만, 서로간의 능력치를 비교하기 매우 힘든 곳이기도 하고. 뭐든 재능이란 게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게 아주 크게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곳이어서, 나도 그런 재능의 부족에 있어서 나를 덜 원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운은 좋고 싶다. 매번 로또가 안 되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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