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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1712 책 로그

어느덧 연말이다. 슬슬 또 이것저것 정리할 때가 오고 있다. 책도 조금 일찍 정리하기로 했다. 이번 달은 책이 잘 안 읽혔다. 올해는 이런 때가 참 많았다. 사실 앞으로는 더 많아지지 않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더욱 더 책이 읽히지 않는 시간. 그러면 내 옆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위안을 두고 살아야 하나.

(~2017/12/20, 늘 그렇듯 추천 책은 볼드체)


2017-10

  •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소리소문 없이 나온 필립 K.딕의 단편집. 이 분의 단편은 몇 개를 읽었는지 모르겠는데도 볼 때마다 내내 감동스러울 지경이다. 과학적 설정 구멍이야 넘치지만 그것마저 압도적인 엄청난 상상력과 그걸 녹여내는 기술이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 후기라지만 이미 전기에도 이 분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키노의 여행 19: 예전에는 오히려 끝났어야 하는데 안 끝난 것 같다면 이번에는 아직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아마도 새롭지 않으면서도 지겹지는 않은 어떤 무드가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아, 그래, 어떤 길을 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고, 있는 동안은 즐거우면서 사라져도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할 것 같은, 그리고 원래 없었던 세상인 마냥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 문화의 수수께끼: 돼지 숭배부터 마녀 사냥까지, 지금은 불가해한 문화 현상에 대해 비난이나 이상한 동경이 아닌 역사적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 에세이.일부 동의하고 일부 의문이 드는 점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객관화하려고 노력한 시선도 좋고 내용도 흥미로웠다.

  • 윌리엄 트레버: 첫 단편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작가의 팬이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상의 이야기. 흔한 주변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훑어나간다. 그냥 흔히 듣고 잊어버릴 이야기이지만 당사자들은 두고 온 마음, 그 위로 흘러가는 삶, 그런 순간에 대한 어떤 찬가.

  • 악어 프로젝트:가해자,혹은 주변인들의 이 ‘불편함’덕에 무수한 일상적인 성폭력을 참고 살아야 했던 것은 비단 우리 나라 만이 아니고 유럽도 마찬가지인 것. 하지만 덕분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결국 많은 피해자만을 낳는 후진적인 방향인 것.

    “왠지 불편하다는 말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으므로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 원더 우먼: 원더 우먼의 발생 이야기. 미국발 그래픽 노블과 다른 스타일의 그림이라 흥미로웠다. 영어도 쉽고(중요).

  • 나를 보내지 마: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가 생각나는 차분하고 잔잔한 성장 소설. 차분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사람에게 추억과 기억과 시선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 넘버스: 서점에서 보고 바로 사서 숨도 안 쉬고 읽은 것 같다. EBS수학 다큐는 진리. 그거 풀어쓴 책도 진리.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쉽고 재밌게 수학의 아름다운 다섯가지 수에 대해 멋지게 풀어놓았다.

  • 나에 관한 연구: 얇고 예쁜 페미니즘 그림동화. 10대 소녀의 혼란한 내외를 글과 그림으로 강렬한 이미지로 만든다.

  • 악의 해부: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전범들의 심리 연구 결과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내가 봐도 일부 애매한 부분도 있고 딱히 결론은 없지만 사람의 악행에 대해 파악하기에 이보다 더 흥미롭고 비극적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 Woman in Science: 얇고 예쁘고 좋은 책. 굉장히 다양한 훌륭한 과학자 이야기가 잔뜩 있었고 늘 숨겨지거나 과소평가된 여성 과학자는 다양하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책도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중국어 6개월에 끝내고 알리바바 입사하기: 작가의 자기 자랑은 과하다고 느껴지고 언어 공부법은 딱히 중국어에 특화된 건 아니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겠다.

  • 한밤의 아이들(1-2): 흥미롭고 우아하면서 화려하다. 하지만 그 덕에 굉장히 피곤하며 집중해서 잡지 않으면 바로 미끄러져버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미꾸라지 같은 소설.

  • 구글에서 배우는 딥러닝: 구글의 엔지니어들을 인터뷰하고 자신들의 리서치를 조금 섞은 화이트 페이퍼 같은 느낌의 책. 가볍게 입문용으로 좋다. 개념은 조금 어수선한 감이 있지만 쉽고, 사례가 책 두께 대비 풍부한 게 장점. 바이킹 호콘: 북유럽 문화나 신화는 정말 어설픈 것밖에 알지 못해서 좀 낯설었지만 흥미로운 신화적 동화.’SAGA’와 유사성이 있다는데 역시나 뭔가 묘한 개념이다 으음. 분위기는 씩씩해서 좋았다.

  •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1: 순박하고 귀여운 트롤 가족 무민네에는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여유롭게 지내는 독특하고 귀여운 라이프스타일. 극장판으로도 유명한 리비에라 이야기나 문제의 꼬마악녀 미이를 만난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2017-11

  • 악몽을 파는 가게(1-2): 킹님의 단편은 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이번 역시 그러하다. 주로 호러지만 가끔 웃음이 나거나 살짝 센티멘탈해지는 단편들도 있다. 어떤 상황만을 던져놓으면 좀 심심해져서 망하는 단편들도 여럿 봤지만 역시 다양한 상황과 심리를 끝내주게 표현하는 킹님이시다보니 그런 구멍같은 거 하나도 없고 정말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근사한 것.

  • 펀 홈: 가족 희비극: 아이러니가 넘쳐나는 레즈비언 작가 앨리슨 백델의 자전적 이야기. 읽는 내내 쓴웃음을 지으며 아아…를 낮게 중얼거렸던, 흥미롭고 우아하면서도 내내 어딘가 서글픈 이야기.

  •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상아탑과 현실의 연결, 연구실에서 필요한 리더 등의 좋은 메시지를 다양한 과학 사건과 연결했다. 쉽고 재밌다. 다만 어수선하고 간혹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사례들이 간혹 눈에 띄어 좀 아쉬웠다.

  • 디스옥타비아: 한 시인이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SF작가의 삶과 글쓰기 에세이와 소설에 자아를 녹여내어,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에서 쓴 눈 먼 올빼미. 아쉬운 점도 아주 조금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넘나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두운 편집과 삽화는 서비스 서비스.

  •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측정하지 않던 것을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떤 식으로 측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그런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어서 모아놓은 책인지라 두말할 나위 없이 흥미로웠다.

  • 수학의 확실성: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논리적이라 허점 하나 없을 것 같이 여겨지는 수학에서 불확실성이 어떻게 늘어만 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수학사를 매우 쉽게 풀어서 차근차근 흥미롭게 설명한 책. 혹자들에게는 비판받는다고도 하지만 나처럼 비전공자이며 응용수학의 가장자리에 젓가락 하나 얹어놓은 사람들에게는 넘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저에게 이 책을 뽐뿌질해주신 모 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 짧은 이야기 긴 사연: 몇 달 전 이 작가를 우연히 접하고 책을 사두었지만 안 읽고 있다가, 최근 타계 소식을 접하고 책을 폈다. 나란 사람은 늘 이렇게, 늦다. 이 책의 단편들도, 다양한 상황의 페이소스를 보여주지만, 표제작 및 많은 이야기에서, 이런 늦음을 담담하면서도 아련하게 이야기한다. 지나간 사랑의 허무함, 떠나간 아쉬움, 그리고 사라진 많은 것들.

  • 땅 속 세상 물 속 세상: 깊은 땅속과 깊은 바닷속에 대해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흥미로운 상식을 꼼꼼하게 전달해주는 예쁜 책. 아이들도 어른들도 새로운 이야기와 귀여운 그림이 듬뿍.

  • 멜랑콜리의 묘약: 제대로 따뜻하고 예쁘고 애수 넘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고운 선물세트. 문장들도 너무 곱고 이야기도 하나같이 특색있게 예쁘고 특히 과거의 향수와 얽힌 이야기들은 짧아도 먹먹하고 아름답고 달콤한 사탕같았다.

  •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이 왜 말이 안 되고 진화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여러 과학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잘근잘근 즈려밟은 글. 독설과 논리가 빛나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2017-12

  • 음식해부도감: 요리 도구부터 디저트까지, 소박하고 예쁜 그림과 함께 깨알같은 설명도 풍부한 즐거운 그림책. 느긋하게 예쁜 일러스트를 따라가다보면 머리에도 마음에도 온기가 돈다.

  • 중간착취자의 나라: 아웃소싱업체의 예로 시작하며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의 구조와 여기서 나오는 기업효율과 인권하락의 악순환을 흥미롭게 다뤘다. ‘노동 압착’이란 말이 입에 쫙쫙 붙고 중간자에 대해 늘 여러 생각을 했던 터라 매우 흥미로웠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지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결론이 좀 어수선했던 게 아쉽다.

  • 분실물이 도착했습니다: 20년 전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퇴근길에, 갑자기, 그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그 친구를 만났다. ‘이거 주려고 기다렸어.’라는 말과 함께 서늘하리만치 하얀 웃음을 보이면서. 대략 이런 느낌의 단편 5개의 모음. 지인의 추천이라 기대했는데 기대보다는 별로였지만 무난한 코지 미스터리물.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노동의 이유를 묻다: 자본주의의 등장부터 현재까지의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차근차근 훑었다. 일이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던 것도 좋고 쉽고 친절한 설명도 좋았지만 정작 막스 베버의 저서에 대한 설명이 너무 적어서, 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좀 아쉬웠다. 중간착취자의 나라와 같이 읽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두번째 : 다양한 국가의 독특한 격언/속담에 대한 그림책. 우리말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가 있었다. 그림은 귀엽고 여러 나라의 이야기가 다양한 특징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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